상상을 뛰어 넘는 히어로의 자동차

여러분은 영화 <배트맨> 시리즈의 역사가 무려 80년을 넘겼다는 사실을 알고 계신가요? 첫 배트맨 작품은 1943년에 흑백 영화로 등장했는데요, 이쯤 되면 ‘계보’라는 말이 어울리는 유구한 배경이라 할 수 있죠.🗒️

배트맨 시리즈의 역사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재미 요소 중 하나가 배트맨의 자동차 배트모빌입니다. 특정 시리즈에서는 ‘텀블러’라는 별명으로도 부르는데요. 초창기 배트모빌은 보통의 승용차 같은 모습이었다면, 최신 배트모빌은 탱크 같은 압도적 힘은 물론, 바이크로 변신하는 기동력까지 갖춘 신기술의 집약체입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다크나이트 라이즈> 속 배트모빌. ⓒWarner Bros.

오늘은 과학 유튜버 “이과형’과 함께 이 배트모빌에 대해 탐구해보고자 합니다. 먼저 배트모빌의 소재가 왜 강철이어야만 했는지, 그리고 배트맨에게 다른 선택지는 없었는지, 강철 기술에 대한 정보와 함께 흥미롭게 소개해 드릴게요. 😀

1960년대 배트맨 TV 시리즈에 등장한 배트모빌을 재현한 모습. ⓒJennifer Graylock/Ford Motor Company

배트맨 자동차는 왜 철로 만들었을까?

배트모빌은 배트맨의 상징과도 같습니다. 배트맨 영화 시리즈 속에서 배트모빌은 다이내믹한 승리를 뒷받침하는 든든한 병기죠. 더불어 그 자체로 하나의 캐릭터 같은 인기와 아우라를 갖고 있습니다. 크리스토퍼 에드워드 놀란(Christopher Edward Nolan) 감독이 2008년 첫 공개한 <다크 나이트> 3부작에서는 군용 장갑차를 재활용한 듯한 '텀블러'가 등장했죠. 한편 1989년 팀 버튼(Timothy Walter Burton) 감독의 영화 <배트맨>에서는 제트 엔진을 장착한 아르데코 조각품 같은 '1989 배트모빌'이 질주했습니다. 이들은 각각 시대의 가장 진보된 기술과 미래적인 상상력을 결합한 결과물이었죠. 🤩

팀 버튼 감독의 <배트맨> 속 배트모빌. ⓒWarner Bros.

맷 리브스 감독의 <더 배트맨> 속 배트모빌. ⓒWarner Bros.

그런데 2022년, 맷 리브스(Matthew George Reeves) 감독의 영화 <더 배트맨>에서 공개된 새로운 배트모빌은 우리의 상식을 완전히 파괴했습니다. 마치 뒷마당에서 망치로 두들겨 만든 듯한 이 자동차는, 강력한 탄성, 내구성, 방탄성을 구현합니다. 총격을 정면으로 맞고도 큰 손상 없이 돌진하는 장면이나, 상대를 강하게 밀어붙이며 돌파하는 모습을 보여주죠. 고밀도 소재이자 고열과 마찰을 견디는 성질, 그럼에도 영화 속 주인공이 스스로 개조했을 만큼 가공이 쉬운 금속은 뭐가 있을까요? 바로 강철입니다. <더 배트맨> 영화 속 배트모빌은 '강철'로 만들어진 걸로 추정돼요. 이과형은 이 배트모빌의 인상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더 배트맨> 속 배트모빌 앞부분에는 모든 것을 부숴버릴 듯한 거대한 충각(쇠로 된 뿔)이 용접되어 있어요, 다른 배트맨 영화 시리즈의 배트모빌에서 볼 수 있었던 수많은 장비 대신 순수한 힘과 위협적인 모습 그 자체를 무기로 삼고 있죠.”

여기서부터 궁금증이 시작됩니다. 영화 속에서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묘사되는 ‘웨인 엔터프라이즈’의 막대한 자본과 기술력을 가진 배트맨이 왜 하필 가장 원시적이고 기본적인 재료인 '철'을 선택했을까요? 이것은 더 나은 기술이 없어서가 아니라, 알면서도 택한 길처럼 보입니다. 이과형은 이 부분이 우리가 주목해볼 재미 있는 지점이라고 소개합니다.

“이것은 단순한 퇴보일까요, 아니면 우리가 모르는 어떤 비밀이 이 두꺼운 강철판 뒤에 숨겨져 있는 걸까요? 이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우리는 배트모빌의 강철 심장을 깊숙이 들여다봐야 합니다.” 🫀

<더 배트맨> 속 배트모빌. ⓒMATT REEVES

다양한 비주얼, 압도적인 성능의 역대 배트모빌. ⓒThe Batmobile

강철의 재발견: 평범함 속에 숨겨진 비범함

<더 배트맨> 속 배트모빌의 뼈대를 이루는 강철은 '초고장력 강판(AHSS, Advanced High-Strength Steel)'이라 불리는 특별한 소재로 추정됩니다. 영화 속 배트모빌은 탱크처럼 단단하면서도 빠르고 민첩한 면을 동시에 갖고 있는데요. AHSS는 일반 강보다 높은 강도를 가지면서도 더 얇은 두께를 구현할 수 있어서 배트모빌의 소재로 적합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

이 원리를 이해하기 위해, 이과형은 벽돌로 쌓는 벽을 상상해 보자고 제안합니다.

“만약 똑같은 모양의 네모난 벽돌로만 벽을 쌓는다면, 그 벽은 금이 가기 시작할 때 한 방향으로 쉽게 쪼개질 겁니다. 하지만 벽을 쌓을 때, 아주 단단한 화강암 돌멩이와 충격을 잘 흡수하는 찰흙을 벽돌 사이에 정교하게 배치한다면 어떨까요? 외부에서 충격이 와도 단단한 돌멩이가 버텨 주고, 깨질 듯한 힘은 찰흙이 흡수하며 분산시키겠죠. 훨씬 튼튼하고 잘 깨지지 않는 벽이 만들어질 겁니다.”

AHSS의 원리가 바로 이것입니다. 제철소의 연구진은 강철에 열을 가하고 식히는 과정을 정밀하게 제어함으로써, 그 내부에 아주 단단한 성질의 결정(돌멩이)과 부드럽고 잘 늘어나는 성질의 결정(찰흙)이 함께 공존하는 복합적인 구조를 만들어냅니다.

이렇게 성질이 다른 두 결정이 함께 있으면, 외부에서 큰 힘이 가해졌을 때 단단한 결정들이 힘의 중심을 버텨내는 동안, 부드러운 결정들은 깨지는 대신 살짝 늘어나며 그 힘을 흡수하고 옆으로 흘려 보냅니다. 이 두 가지 구조가 서로의 단점을 보완해주며, 그냥 단단하기만 하거나 무르기만 한 강철보다 훨씬 뛰어난 강도와 충격 흡수력을 갖게 되는 것이죠.

그리고 이 서로 다른 성질의 결정 구조를 의도적으로 만들어내는 핵심 과정이 바로, 마치 대장장이가 명검을 만들 듯이 강철을 더 강하고 질기게 만드는 '담금질'과 '뜨임'입니다.

●   담금질은 뜨겁게 달군 강철을 물이나 기름에 넣어 급격히 식히는 과정으로, 내부에 '단단한 돌멩이' 같은 결정을 형성시킵니다.

● 뜨임은 다시 적절한 온도로 가열해, 이 단단한 결정의 스트레스를 풀어주어 '질긴' 성질을 부여하고 전체적인 균형을 맞추는 과정입니다. 

이번에는 좀 더 과학적인 정보를 더해 이 과정을 설명해 볼까요? 담금질을 위해 뜨겁게 철강을 달구면 철강 속 원자들이 자유롭게 움직입니다. 이것을 급랭해 갑자기 식혀버리면 원자들이 엉킨 채로 얼어버립니다. 이때 마르텐사이트라는 조직이 생깁니다. 아까 설명한 벽돌 속 돌멩이처럼 단단하게 버텨주는 존재가 되는 거죠. 여기에 뜨임은 약간 더 데우는 역할을 하는데요. 뜨임으로 강철을 낮게 가열하면 너무 딱딱하던 부분이 살짝 부드러워지고 원자들이 천천히 제 자리를 잡습니다. 그러면 마르텐사이트 안에 있던 탄소들이 슬슬 움직입니다. 이 탄소들이 뭉쳐서 만드는 탄소 화합물이 바로 시멘타이트입니다. 시멘타이트는 아까 든 벽돌 예시에서 찰흙 같은 질긴 힘을 부여하는 역할을 합니다. 뜨임의 과정은 마르텐사이트 속 탄소를 잘 조절하는 과정입니다. 결국 강철이 적당히 강하고 질겨 튼튼하도록 균형 잡힌 성질을 완성합니다. 

어떤가요? 이러한 강철의 성질이 있기에 <더 배트맨> 속 배트모빌의 강철 프레임은 단순한 뼈대가 아니라, 그 자체로 모든 것을 부숴버리며 스스로를 지키는 방패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배트맨 비긴즈> 속 배트모빌. ⓒWarner Bros.

다른 길, 다른 철학

하지만 배트맨에게 강철 말고도 다른 소재나 전투 스타일은 없었을까요? 있었습니다. 이과형은 ‘배트맨이 어떤 길을 포기했는지 알면, 그가 선택한 길의 의미가 더욱 명확해진다’고 강조합니다. 배트맨이 포기한 ‘가지 않은 길’은 무엇이었을까요? 그는 바로 다음의 두 가지 소재라는 선택지를 갖고 있었습니다. 👀

첫 번째 길: '외과수술'처럼 빠르고 효율적인 전투

이 길의 핵심 소재는 '티타늄'입니다. 티타늄 합금은 강철과 비슷한 수준의 방어력을 가지면서도 무게는 30~40%나 가볍습니다. 만약 배트맨이 적진에 가장 빠르고 조용히 침투하여, 외과의사처럼 정밀하게 임무를 수행하고 빠져나오는 '기동성'을 최우선으로 생각했다면, 티타늄은 의심할 여지가 없이 최고의 선택이었을 겁니다. 가벼운 차체는 더 빠른 속도와 민첩한 움직임을 의미하니까요.

두 번째 길: 움직이는 '무적의 요새'

이 길은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 나이트> 3부작 속에서 보여준 기술입니다. 핵심은 '복합 장갑(Composite Armor)’으로, 세라믹, 고무, 강철 등 여러 재료를 겹겹이 쌓아 어떤 공격도 버텨내는 이동 요새를 만드는 개념입니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이 사용하는 '초밤 장갑’은 공격을 받으면 내부의 고무층이 팽창하며 장갑판을 흔들어 공격 에너지를 상쇄시키는 원리입니다. 이 장갑은 모듈(부품) 형태로 만들어 차체에 덧붙이기 때문에, 차량은 자연히 평평하고 각진 모습을 띠게 됩니다. 즉, ‘텀블러’의 독특한 외형은 멋이 아니라, '어떤 공격도 버텨내겠다'는 생존 우선의 철학이 겉으로 드러난 결과물인 셈이죠.

이처럼 배트맨에겐 정밀한 기동성을 위한 '티타늄'이라는 길과, 압도적 방어력을 위한 '복합 장갑'이라는 길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외과 수술 같은 '속도'도, 무적의 '요새'도 아닌, 제3의 길을 택했습니다. 그가 묵묵히 강철을 택한 진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장갑: 적의 총포탄을 막기 위하여 배나 차 따위에 특수한 강철판을 덧쌈. 또는 그 강철판.

*초밤 장갑: 1960~1970년대에 영국에서 개발된 전차용 복합 장갑.

가장 강력한 무기는 '공포'다

배트맨이 ‘티타늄’의 가벼움과 ‘복합 장갑’의 첨단 기술을 모두 외면하고 굳이 '강철'을 택한 이유를 이과형은 이렇게 결론 짓습니다.

“기술의 영역이 아닌 심리의 영역에 그 답이 있습니다. 강철 배트모빌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기술이 아닌, 바로 '공포'이기 때문입니다. 한번 상상해 볼까요? 스텔스 전투기처럼 소리 없이 다가오는 세련된 첨단 머신과, 지축을 울리는 V8 엔진의 굉음과 함께 어둠 속에서 거대한 강철 괴물이 당신을 향해 돌진해 오는 것 중, 어느 쪽이 더 원초적인 공포를 느끼게 할까요? 첨단 기술은 감탄을 자아내지만, 압도적인 무게와 힘으로 모든 것을 부수며 다가오는 강철 덩어리는 본능적인 공포를 심어줍니다.”

이건 결국 “나는 너의 총알을 막는 것이 아니라, 너와 네가 탄 차를 통째로 뚫고 지나가겠다”는 저항할 수 없는 힘의 선언 그 자체라고 볼 수 있죠. 실제로 이 배트모빌의 핵심은 정교한 전술이 아닌, 순수한 힘과 현실적 위협을 앞세운 심리전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다른 배트모빌들이 가진 복잡한 장비가 없다는 점, 그 단순함이야말로 이 차의 가장 큰 특징이자 무서움의 근원인 셈입니다.

배트맨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첨단 소재가 아니라, 바로 소재 그 자체가 심는 육중한 '공포' 그 자체였던 겁니다. 💀

오래된 것의 새로운 미래

결국 배트맨의 강철 배트모빌은 우리에게 중요한 사실을 알려줍니다. 혁신은 언제나 완전히 새로운 것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라, 가장 평범하고 오래된 것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활용하느냐에 따라 재탄생할 수 있다는 사실이죠.

이과형은 이러한 생각의 전환을 강조합니다.

“<다크나이트> 시리즈 속 배트모빌은 평상시엔 5.7리터 V8 엔진의 힘으로 달리지만, 결정적인 순간엔 제트 부스터를 가동해 다리 없이도 점프하는 폭발력을 가집니다. 구식 기술의 안정성과 신기술의 폭발력을 결합한 것이죠. 심지어 <더 배트맨> 영화 촬영 현장에서는, 굉음을 내뿜는 V8 엔진 차량과 함께, 조용한 주행 장면 등을 위해 테슬라 전기차를 기반으로 개조한 스턴트 차량이 함께 사용되었습니다. 이는 미래의 배트맨이 V8 엔진의 공포스러운 사운드와 전기 모터의 소리 없는 기습이라는 장점을 모두 가진, 궁극의 하이브리드 심장을 갖게 될 것이라는 현실적인 암시일지도 모릅니다.”

<더 배트맨> 속 배트맨. ⓒWarner Bros.

배트맨 영화 속 배트모빌의 강철 심장과 그것이 상징하는 바, 어떠셨나요? 이제 우리는 세상을 조금 다르게 볼 수 있습니다. 인류 문명의 시작과 함께했던 가장 오래된 재료 '철'은, 오늘날 첨단 공학을 만나 가장 무서운 무기가 되었습니다.

어쩌면 우리 주변에 있는 가장 평범한 것들 속에, 아직 우리가 발견하지 못한 놀라운 잠재력이 숨어있을지 모릅니다. 여러분의 삶을 바꿀 수 있는, 주변의 또다른 '강철'은 무엇인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