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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오펜하이머> 속 강철이 가리키는 인류의 선택지

2025.07.29

유튜버 ‘이과형’이 읽어낸 <오펜하이머> 속 강철의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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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오펜하이머> 속 오펜하이머

 

영화 <오펜하이머> 1945 미국에서 성공한 인류 최초의 핵실험인 트리니티 실험과 그를 이끈 과학자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Julius Robert Oppenheimer) 실제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2023 개봉해 많은 영화상을 수상했죠. 영화의 도입은 의미심장합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 속에서 신들의 불을 훔쳐 인간에게 프로메테우스의 이야기를 들려주죠. 핵무기 개발을 주도한 과학자 오펜하이머는 곧잘 프로메테우스에 비유되거든요. 오늘 모먼트는 공학 유튜버이과형 함께 <오펜하이머> 속에서 찾아볼 있는 강철의 이야기를 파헤쳐볼 겁니다. 그리고 강철이 어디까지 진화했는지, 이러한 소재를 지금 시대의 오펜하이머인 우리들이 어떻게 탐구해 나가면 좋을지도 생각해 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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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오펜하이머> 포스터

 

 

 

인류 운명을 바꾼 실험의 목격자, 강철 용기점보

 

영화 <오펜하이머> 속에는 실제 인류 최초의 핵폭탄 ‘가젯’이 등장합니다. 가느다란 100피트 높이의 강철탑에 매달려 있는 마치 거대한 공 같은 모습이죠. 1945년 7월 16일 새벽, 트리니티 실험은 뉴멕시코 사막에서 인류의 운명을 바꿨습니다. 실험이 성공한 것이죠.

 

그런데 여러분, 그 사실 아셨나요? 현장에는 하나가 아닌, 두 개의 탑이 서 있었다는 사실을요. 하나는 영화 속에 상징적으로 등장하는 ‘가젯’이고, 또 하나는 ‘가젯’에서 약 700미터 떨어진 곳에 핵물질을 차폐할 214톤의 거대한 철제 차폐용기, ‘점보’였습니다.

 

이과형은 점보가 ‘혹시 모를 핵폭발 실패에 대비한 인류 최후의 보험이었다’고 소개해요. 당시 트리니티 실험의 이론은 전혀 검증된 적 없는 기술이었어요. 그래서 만약 가젯 안에 재래식 폭약만 터지고 *핵 연쇄 반응이 일어나지 않아 불발이 발생할 경우, 1944년 당시 천문학적인 가치를 지닌 플루토늄이 사막에 흩어져 버리는 재앙을 막아야 했죠. 점보의 임무는 내부에 가젯을 배치해, 불발 시에도 값비싼 핵물질을 안전하게 회수할 수 있도록 하는 요새로 기능하는 것이었습니다.

* 연쇄 반응: 원자 폭탄, 원자력 발전의 원리로, 하나의 반응에서 방출된 고에너지 입자가 주변 다른 핵을 자극해 연쇄적으로 핵반응을 일으키는 .

 

1945년 봄이 되자, 상황은 역전되기 시작했습니다. 실험 설계에 대한 과학자들의 자신감이 크게 증가했고, 플루토늄 생산 또한 안정화되면서 실패에 대한 부담이 줄어들었죠. 바로 그때, 그들은 더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만약 점보 안에서 폭탄을 터뜨린다면, 폭발 에너지와 방사능 효과 같은, 인류가 처음 보게 될 현상에 대한 결정적인 데이터를 수집하는 데 심각한 방해가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비싼 플루토늄을 보호해야 할지, 아니면 더 상세한 실험 결과를 확보해야 할지를 고르는 고민이 되었죠. 결국 점보는 사용되지 않았고, 실패 방지책이 아닌 인류가 만들어낸 미지의 힘을 가장 가까이서 목격할 ‘증인’이라는 새로운 운명을 맞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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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젯 설치 모습 ⓒPublic Dom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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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니티 실험 점보 모습 ⓒFederal government of the United States

 

 

상처 없는거인점보’ – 생존의 물리학

 

가젯의 폭발 후, 강철탑은 즉시 파괴됐고 주변의 사막 모래는 '트리니타이트'라는 녹색 유리로 녹아내렸습니다. 모든 것이 사라진 황폐함만 남았죠. 그런데 놀랍게도, 불과 700여 미터 떨어진 곳에 거리를 두고 서 있던 점보는 완전히 멀쩡한 상태로 살아남았습니다. 심지어 점보를 지탱하고 있던 70피트 높이의 또 다른 강철탑은 종잇장처럼 구겨지고 엿가락처럼 휘어버렸는데도 말이죠.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점보는 어떻게 만들어졌길래 멀쩡했을까요?

정답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이과형은 “물리학의 가장 기본적인 두 가지 법칙이 점보의 생존을 설명한다”고 소개합니다.

첫 번째는 '거리의 역제곱 법칙'입니다. 폭발의 에너지는 폭파 지점에서 멀어질수록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여 급격하게 약해집니다. 연못에 돌을 던지면 그 파문이 중심에서 가장 강하고 가장자리로 갈수록 약해지는 것과 같은 원리죠. 폭파 지점에서 수백만 도에 달했던 열과 압력은 700여 미터 거리에서는 상당히 약해졌습니다. 물론 그 힘만으로도 가느다란 탑을 녹여버리기엔 충분했지만, 거대한 점보에게는 큰 위협이 되지 못했던 겁니다. 이러한 ‘거리의 역제곱 법칙’에 대입해 보면, ‘가젯’의 폭발이 ‘점보’에 미친 폭발 에너지를 아래 공식으로 셈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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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단서는 바로 '질량과 관성'입니다. 214톤에 달하는 ‘점보’의 압도적인 질량은 그 자체로 엄청난 관성을 부여했습니다. 허리케인이 깃대를 쓰러뜨리기는 쉬워도 산을 움직이지는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원리죠. 이것이 얼마나 압도적인 강도인지는 훗날의 한 실험이 증명합니다. 미군이 ‘점보’를 파괴하기 위해 내부에 500파운드짜리 폭탄 8개를 넣고 터뜨렸을 때, 양쪽 끝부분만 날아갔을 뿐 몸체는 건재했습니다. 이과형은 “결국 점보의 생존은 두 가지 힘의 본질을 명확히 보여준다”고 설명합니다.

 “가젯을 매달고 있던 가느다란 강철탑이 날아간 건 핵 반응의 위력을, 점보의 생존은 질량과 강철의 힘을 드러냅니다.”

 

 

수호자이자 아킬레스건이 된 강철

 

1945년에서 80년이 흐른 오늘날, 원자력과 강철의 현재는 어디에 와 있을까요? 강철은 이제 인류의 '수호자' 역할을 맡습니다. 핵의 위협으로부터 강철이 우리를 보호한다는 사실을 점보를 통해 알게 되었고, 점보가 진화하여 오늘날의 원자로 압력 용기(RPV)가 되었습니다. 원자력 발전소에서 가장 중요한 안전 부품을 단 하나만 꼽으라면, 단연 원자로 압력 용기(RPV)입니다. 이것은 *특수 저합금강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강철 요새로, 그 두께는 약 20cm를 넘습니다. 이것의 임무는 원자로 노심(핵분열이 일어나는 중심 부분)과 내부의 고압(약 14 MPa), 고온(약 300°C) 냉각재를 완벽하게 밀폐하여 방사능 유출을 막는 1차 방호벽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특수 저합금강: 특정 특수 용도에 맞춰 합금 원소를 첨가하여 강도를 높이거나, 내열성, 내식성 특정 성능을 향상시킨 강철.

공장, 산업, 건물, 공학이(가) 표시된 사진  AI 생성 콘텐츠는 정확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원자로 압력 용기 ⓒPublic Domain

 

이 강철 요새는 보이지 않는 적, 즉 방사선과 싸워야 합니다. 강철은 '차폐'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죠. 에너지가 높은 빛의 일종인 감마선을 막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밀도가 높은 물질을 사용하는 것인데, 강철은 높은 밀도와 구조적 강도를 모두 갖춰 매우 효과적인 감마선 차폐재로 사용됩니다.

하지만, 원자로 내부에서 쏟아져 나오는 또 다른 입자인 '중성자'와 강철의 상호작용은 훨씬 더 복잡합니다. 강철은 빠른 중성자의 속도를 늦춰 효과적으로 방어할 수 있지만, 이 과정에서 부작용이 발생합니다. 바로 '중성자 활성화'입니다. 중성자가 철 원자핵에 흡수되면서, 안정적인 철이 방사성 동위원소로 변하는 현상이죠. 즉, 방패로서 만든 강철 자체가 2차 방사선원이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 중성자는, 강철 요새에 훨씬 더 치명적인 또 다른 상처를 남깁니다. 보이지 않는 부식, ‘중성자 취화’ 현상이라는 아킬레스 건입니다.

 

‘중성자 취화’ 현상은 60년에서 80년에 달하는 원자로의 수명 동안, 원자로 압력 용기(RPV)는 원자로 노심에서 방출되는 고에너지 중성자에 끊임없이 두들겨 맞습니다. 이 고에너지 중성자들은 마치 원자 크기의 포탄처럼 행동하며, 강철의 질서정연한 결정 격자 구조에 있는 철 원자들을 때려 제자리에서 이탈시킵니다. 아래 그림에서는 제자리를 이탈한 철 원자들과 그로 인해 생긴 빈 공간(결함 영역)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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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과정을 아주 쉽게 비유해 볼까요?

플라스틱 빨대나 고무줄의 노화 현상을 상상해보세요. 처음에는 유연하고 잘 구부러지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딱딱해지고 어느 날 툭 부러져 버리죠. 자외선, 산소, 온도 변화 같은 환경에 오래 노출되면서 분자 구조가 변해 탄성, 내구성이 저하된 겁니다.

중성자 취화가 바로 이와 비슷합니다. 수십 년에 걸쳐 원자 단위의 결함들이 축적되면, 강철은 단단해진 동시에 훨씬 더 깨지기 쉬운 상태(취성)가 됩니다. 왜냐고요? 강철은 온도가 낮을수록 취성, 높을수록 연성을 드러내는데, 충격에 잘 깨지는 임계 온도를 ‘연성-취성 천이 온도’라고 합니다. 이 온도보다 낮아지면 작은 충격에도 깨지는 거죠. 강철에 결함이 축적되면 바로 이 '연성-취성 천이 온도'가 점차 상승합니다. ‘연성-취성 천이 온도’가 상승한 강철은 더욱 쉽게 취성 상태가 되는 겁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과학자들이 연구를 통해서 구리(Cu)나 인(P)과 같은 미량의 불순물이 이 취화 현상을 극적으로 부채질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현대 원자로용 강철을 제조할 때는 이 불순물들의 함량을 원자 단위에서부터 극도로 낮게 조절합니다.

결국 원자로 압력 용기(RPV)는 원자력 기술의 현 주소를 그대로 보여줍니다. 이과형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원자로 압력 용기(RPV)가 중성자 취화에 대응하는 모습을 보면 엄청난 힘을 안전하게 제어하려는 공학 기술의 노력을 볼 수 있어요. 원자력 발전소의 수명은 단순히 기계적 마모의 정도가 아니라, 재료인 강철의 과학적 한계와 성능 저하를 우리가 얼마나 정확히 예측하고 관리하는지에 달려 있습니다.”

 

 

더 작고, 더 똑똑하고, 더 안전하게! 진화하는 강철

 

강철의 약점인 '중성자 취화'가 원자로의 수명을 결정하는 근본적인 문제라면, 이 문제를 뿌리부터 해결할 방법은 없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과학자들은 재료 자체의 '진화'에서 찾고 있습니다.

차세대 원자력 기술로 주목받는 ‘소형 모듈 원자로(SMR)’는 기존 원자로보다 크기를 줄였습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단순히 크기만 줄인 원자로가 아니라, 일부 ‘소형 모듈 원자로(SMR)’ 설계에서는 그 핵심 부품인 원자로 압력용기(RPV)에 사용하는 강철의 종류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혁신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바로 '취성'의 위험을 원천적으로 제거하기 위해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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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과형은 그 비밀이 “원자들이 배열된 방식, 즉 결정 구조에 있다”고 짚었는데요. 정리해보면 아래 두 가지 결정 구조로 그 차이를 구분해볼 수 있습니다. 바로 전통 방식인 페라이트강에 뒤이어 혁신 방식인 오스테나이트강이 등장한 것입니다.

 

● 페라이트강 (전통 방식): 원자들이 엉성한 '체심입방격자(BCC)' 구조를 가집니다. 이 구조는 '연성-취성 천이 온도'의 변화라는 명확한 약점을 가집니다.

● 오스테나이트강 (혁신 방식): 원자들이 훨씬 촘촘하고 안정적인 '면심입방격자(FCC)' 구조를 가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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촘촘한 ‘면심입방격자(FCC)’ 구조를 가진 오스테나이트강은 '연성-취성 천이 온도'의 현상이 아예 없습니다. 즉, 온도가 아무리 낮아져도 전통적인 강철처럼 갑자기 유리처럼 깨지는 현상 자체가 발생하지 않습니다. ‘면심입방격자(FCC)’ 구조는 원자들이 미끄러질 수 있는 ‘활주면’이 더 많아 외부 충격을 받아도 에너지를 부드럽게 흡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단순히 재료를 바꾸는 것이 아닌, '시간이 지나면 약해져서 깨질 수 있는’ 감시와 관리가 필요한 재료에서, '애초에 그런 방식으로 파괴될 위험 자체가 없는' 근본적으로 안전한 재료로 전환하는 안전 패러다임의 전환입니다.

 

뿐만 아니라, ‘소형 모듈 원자로(SMR)’의 '공장 대량 생산' 모델은 또 다른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를 제공합니다. 바로 '중성자 활성화'로 인한 방사성 폐기물 문제입니다. 원자로 내부의 강철은 ‘코발트-59’라는 불순물 때문에 높은 방사성을 띠는 폐기물이 됩니다. 원자로가 작동하며 나오는 중성자가 코발트를 자극하면 ‘코발트-60’이라는 강한 방사능 물질로 변하기 때문입니다. 해결책은 코발트 함량을 극도로 낮춘 '저코발트 스테인리스강'을 쓰는 것이지만, 이 특수 재료는 비싸고 수요가 불규칙했죠. 하지만 ‘소형 모듈 원자로(SMR)’가 공장에서 자동차처럼 대량 생산되면, 이 특수강에 대한 꾸준하고 예측 가능한 수요가 창출될 겁니다. 재료 비용도 내려가고, 안전한 원자로를 더 싸고 쉽게 만들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거죠.

 

강철에 담긴 우리의 선택

 

결국, 핵 시대의 강철의 여정은 영화 <오펜하이머>가 짚었듯이, 인류가 신들로부터 훔친 불을 다루는 법을 배워가는 이야기 그 자체입니다. 이 과정에서 재료는 시스템 전체의 안전과 환경을 결정하는 필수적인 부분이 되었습니다.

과학자 오펜하이머가 "나는 이제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도다"라고 읊조렸던 그 순간의 고뇌는, 한번 훔친 불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에 대한 책임이 영원히 우리에게 있다는 깨달음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과형은 “물질 자체는 중립적”이라고 이야기를 매듭짓습니다.

“강철의 밀도, 강도, 원자 구조와 같은 특성은 그저 자연의 사실일 뿐입니다. 이러한 특성이 도시를 파괴하는 폭탄을 만드는 데 쓰일지, 도시에 전력을 공급하는 원자로를 짓는 데 쓰일 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렸죠. 인간의 독창성과 야망,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우리의 도덕적, 윤리적 선택에 맡겨진 문제입니다.”

핵 시대의 강철을 완벽하게 만들려는 이 끝없는 탐구야말로, 그 엄청난 책임에 부응하려는 우리 나름의 노력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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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oment 편집인 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