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한 번쯤은 들어보셨을 겁니다. 무대 위에서 노래하고 춤추는 K-POP 아이돌이, 현실과 상상이 뒤섞인 세계에서 악마와 싸운다는 이야기. 넷플릭스의 <케이팝 데몬 헌터스>(이하 케데헌)이 세계적으로 뜨겁습니다. 영화 OST는 미국 빌보드 메인 싱글 차트 ‘핫 100’에서 8주 동안 1위를 차지했고, 영화에 등장한 K-푸드의 매출도 급증했습니다. 관련 팝업에는 한 달 동안 15만 명의 관객이 다녀갔죠.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것들이 주목받는 가운데, 주인공들의 무기도 즐거운 이야기거리 중 하나입니다. 화려한 조명과 퍼포먼스 사이로 번쩍이는 검의 궤적, 그 속에서 ‘무기’는 단순한 소품이 아니라 존재의 언어가 됩니다. 아이돌의 무기는 모두 가벼운 장식품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케데헌의 무기는 다릅니다.
이 무기들은 실제로 악을 벤다는 세계관의 전제 위에서 설계되어 있습니다. 조선시대 왕실 문화나 민화 속 상징 같은 우리의 전통문화를 현대적으로 풀어냈다는 점도 인상적입니다. 그리고 더 흥미로운 점이 하나 있습니다. 각 무기의 콘셉트는 서로 다르지만, 결국 그 뿌리를 따라가면 모두 ‘철’이라는 한 가지 재료로 수렴한다는 추론에 닿게 됩니다.
아주 오래된 단조 기술에서부터 현대의 열처리 공학, 그리고 스테인리스강의 미세조직에 이르기까지! 오늘은 케데헌의 주인공 헌트릭스의 대표적인 세 가지 무기를 이과형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
루미의 사인검은 '검'과 '마이크'라는 이질적인 두 요소를 결합한 형태입니다. 한쪽은 베고 가르는 힘의 상징이고, 다른 한쪽은 목소리와 감정, 공연의 중심입니다. 하지만 루미는 이 두 가지를 동시에 쥐고 무대 위에 섭니다. 단순한 무기를 넘어, 그 자체로 하나의 완벽한 퍼포먼스 장비이자 하이테크 예술품으로 설계되었습니다. 미라의 칼(곡도)이 전통 기술과 첨단 기술의 '융합'이라면, 루미의 사인검은 가장 세련된 현대 기술의 '집약'을 상징합니다.
두 얼굴의 스테인리스강, 그 비밀의 원자 구조
조명이 비추는 무대는 뜨겁습니다. 땀과 습기로 가득하죠. 이런 무대 환경에서도 루미의 마이크이자 검은 반짝여야 합니다. 사인검의 손잡이와 몸체는 오스테나이트계 스테인리스강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목적에 따라 원자 배열 구조부터 다른 두 종류의 스테인리스강을 조합하는 방식이죠. 이 금속은 스스로를 지키는 얇은 보호막을 몸에 두르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얇지만 상처가 나도 곧장 다시 재생되는 보호막이죠. 크롬이 만든 이 막은 외부의 습기와 공기 중의 산소가 금속 속으로 침투하는 것을 단번에 막아버립니다. 심지어 이 금속은 상온에서도 유연하고 부드럽습니다. 마이크처럼 손에서 미세한 제스처를 만들어내는 장치에 어울리는 성질이죠.
하지만 칼은 전혀 다릅니다. 칼날은 항상 날이 서있어야 하죠. 루미의 칼날은 마르텐사이트계 스테인리스강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금속을 만들기 위해선 먼저 뜨거운 불 속에서 금속을 오스테나이트라는 고온의 상태로 끌어올립니다. 그 뜨거움을 식힐 틈도 주지 않고, 물이나 기름 속으로 순식간에 떨어뜨립니다. 원자들이 안정된 자리를 찾기 전에 얼어붙는 순간, 금속 내부는 더욱 단단해집니다. 그 응력 덕분에 칼날이 쉽게 마모되지 않고, 깨지지도 않죠. 즉, 루미의 사인검은 부드러움과 긴장, 재생과 응축, 노래와 전투가 결합된 금속의 하이브리드입니다 ⚔️🎤
사인검의 몸체와 손잡이
● '니켈' 덕분에 내식성이 뛰어난 '오스테나이트계 스테인리스강'
● 강철에 크롬(Cr)을 섞어 녹슬지 않은 스테인리스강을 완성합니다. 크롬은 공기 중에서 산소와 만나 눈에 보이지 않는 얇고 강력한 산화크롬(Cr₂O₃) 보호막을 표면에 형성하고, 이 보호막은 스스로 재생되는 능력이 있어 흠집이 나도 즉시 새로운 막이 생겨 녹을 원천적으로 차단합니다. 여기에 ‘니켈(Ni)’을 추가해 ‘오스테나이트’라는 더 강력한 강철을 만듭니다. 원자 구조는 1000°C 이상의 고온에서만 나타나는 ‘한시적인 안정 상태’입니다. 마치 소금물이 영하의 온도에서도 잘 얼지 않는 것처럼, 니켈 원자들이 오스테나이트 구조가 상온에서도 가장 안정적인 상태가 되도록 환경을 바꿔버립니다. 이 강철은 고온에서 식어도 다른 구조로 돌아가지 않고, 상온에서도 영구적으로 안정적인 오스테나이트 구조를 유지합니다. 이 구조는 원자 배열이 촘촘해 부식에 강할 뿐만 아니라, 금속 자체가 유연하여 마이크처럼 복잡하고 아름다운 형태로 가공하기에도 최적입니다.
사인검의 칼날
● 압도적인 경도와 날카로움의 '마르텐사이트계 스테인리스강'
● 먼저 강철을 1000°C 이상으로 가열해, 고온에서 안정적인 '오스테나이트' 구조로 만듭니다. 그 직후, 강철을 물이나 기름에 넣어 아주 빠르게 식혀버립니다. 이렇게 온도를 순식간에 빼앗아 버리면, 원자들은 원래의 안정적인 상온 구조로 돌아갈 시간을 놓치고 맙니다. 원자들은 돌아가려다 말고, 어정쩡하고 뒤틀린 바늘 같은 형태의 '마르텐사이트(Martensite)' 구조로 그 자리에 '얼어붙게' 됩니다.
마르텐사이트 구조는 안정적인 상태가 아닙니다. 오히려 억지로 구겨 넣은 종이처럼 내부에 엄청난 '응력(Stress)'을 품고 있는 극도로 불안정한 상태입니다. 바로 이 내부의 강력한 스트레스 때문에 외부의 힘에도 거의 변형되지 않으려는 성질, 즉 엄청난 '경도(Hardness)'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높은 경도는 칼날을 예리하게 세우고 쉽게 무뎌지지 않게 합니다. 이와 같은 특성 덕분에 자동차 내판처럼 강도와 충돌 에너지 흡수 능력이 필요한 부품, 즉 차체의 주요 골격 부재 등에 주로 사용되기도 하죠.
© 현대자동차
케데헌에 등장하는 미라의 무기는 김해 대성동고분군에서 출토된 가야시대 철제 곡도(曲刀)를 모티브로 디자인되었다고 합니다. 날이 휜 도검으로 직도에 비해 더 베기 편하고 튼튼하며 말을 타면서도 사용하기 좋아 기병의 무기로 알려져 있죠. 그 곡선 하나에 한국의 전통 기술이 응축되어 있습니다. 단단함과 질김, 예리함과 유연함—서로 공존할 수 없는 성질들이 한 몸 안에서 균형을 이룹니다.
강함과 질김을 모두 잡는 '접쇠(Laminated Steel)'
거대한 곡도를 휘두르는 순간, 충격은 손끝으로 파고듭니다. 만약 그 몸체가 단 한 종류의 강철로만 만들어졌다면, 첫 번째 충돌에서 이미 산산이 부서졌을 겁니다. 단단한 강철은 예리하지만, 동시에 깨지기 쉬운 유리와도 같거든요. 이런 소재의 단점을 해결하기 위해 서로 다른 강철을 겹쳐 하나로 접는 방식, ‘접쇠(折鋼)’ 방식을 찾았죠.
칼을 자세히 살펴보면 오레오처럼 3겹으로 되어 있습니다. 검은색 쿠키처럼 겉을 감싸고 있는 부분은 저탄소강, 가운데 하얀 크림 부분에는 고탄소강이 자리합니다. 바깥을 감싸는 저탄소강은 질기고 부드러워 충격을 받아내는 근육 같은 존재입니다. 고탄소강은 다이아몬드처럼 단단하고, 베는 순간의 결정을 담당하는 심장이죠.
페인트처럼 겉만 코팅되어진 것이 아니라 고온과 고압으로 하나의 물질처럼 화학적으로 결합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이러한 결합을 '단접(Forge Welding)'이라고 하죠. 칼을 갈아 날을 세우면, 연필을 깎을 때 흑연 심이 노출되듯, 가장 날카로운 칼끝에는 정확히 가운데의 고탄소강이 노출되어 최고의 절삭력을 발휘하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잘 베이지만 충격에 깨지기 쉬운' 고탄소강과 '질기지만 무딘' 저탄소강의 장점만을 결합하여 '잘 베이면서도 부러지지 않는' 이상적인 하이브리드 무기가 탄생하는 것입니다. 고탄소강이 칼의 날카로움을, 저탄소강이 충격의 파도를 흡수하며 서로를 붙잡고 균형을 이룹니다.⚔️
가운데 (크림 부분): 고탄소강 (탄소 약 0.6% ~ 1.7%)
● 실제 절삭을 담당하는 칼날의 핵심입니다. 다이아몬드처럼 단단해서 면도날 같은 날카로움을 만들어내고, 그 날이 쉽게 무뎌지지 않도록 합니다.
양쪽 겉면 (쿠키 부분): 저탄소강 (탄소 약 0.05% ~ 0.25%)
● 충격 흡수와 칼의 파손 방지를 담당합니다. 고탄소강보다 훨씬 부드럽고 질겨서, 외부 충격이 가해졌을 때 자동차의 서스펜션처럼 그 충격을 흡수하고 분산시킵니다. 또한, 콘크리트 속 철근처럼 가운데의 고탄소강을 단단히 붙잡아, 작은 균열이 발생하거나 번지는 것을 막아줍니다.
신칼은 일반적으로 무당과 제신들이 제사를 위해 사용하는 상징적인 도구였습니다. 실제 전투용으로 만든 건 아니죠. 무당의 도구였던 신칼에 담긴 여러 역사와 의미는 주인공들이 '퇴마사'로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서사를 더욱 깊고 풍부하게 만들어준 것 같아요.
절대적인 경도와 칼날의 유지력을 위한 ‘마르텐사이트’
루미의 사인검이 '기술', 미라의 곡도가 '힘'이라면, 조이의 신칼은 '정밀함'과 '예리함' 그 자체를 상징합니다. 이를 위해 극한의 정밀 공학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무기의 길이가 짧은 만큼 휘는 것보다는 단단함에 포커스를 맞췄죠. 이 얇고 섬세한 단도는 어떤 힘에도 휘지 않습니다. 금속이 품은 구조적 긴장, 바로 마르텐사이트계 스테인리스강의 비밀에 있습니다. 이 강철은 뜨거운 불 속에서 태어나고, 차가운 액체 속에서 얼어붙습니다. 1,000도가 넘는 열에 달궈진 순간, 금속의 원자들은 활발하게 움직이며 서로의 경계를 무너뜨리죠. 물과 기름으로 순간적으로 냉각하면 원자들은 제자리를 찾기도 전에 얼어붙습니다. 원자는 제자리에 돌아갈 틈도 없이 비틀리고, 엉키고, 서로를 밀어내며 내부에 ‘응력(Stress)’을 남깁니다. 움직이지 않으려는 힘, 변하지 않으려는 저항, 바로 그것이 신칼의 ‘날’ 을 유지하게 하는 근원적인 긴장이죠.
최고의 경도를 달성하기 위해 '마르텐사이트계 스테인리스강'
● ‘담금질(Quenching)’이라는 특별한 열처리를 통해 발휘됩니다. 고온으로 가열하여 원자 구조를 ‘오스테나이트’ 상태로 만든 뒤, 물이나 기름에 넣어 급속 냉각시켜 응력을 만들어냅니다. 응력이 담긴 뒤틀린 ‘마르텐사이트(Martensite)’가 바로 외부의 힘에 변형되지 않으려는 엄청난 ‘경도(Hardness)’를 만들어냅니다.
실제로 무기들이 빛날 수 있나요?
지금까지 이과형과 헌트릭스의 무기가 어떻게 만들어졌을지 상상을 해보았어요. 영화를 통해보면 무기들은 찬란하게 빛나고 있습니다. 콘셉트는 매우 흥미롭지만, 이를 실제로 빛나는 무기를 만들 수 있는지, 무기로서 적절한지 현실적인 질문들을 해보았습니다.
Q. 이 무기들을 실제 전투용으로 제작하는 것이 가능할까요?
A. 무기에 발광을 위한 전자 장비를 통합하는 순간 단순한 무게 문제를 넘어 ‘무게 배분’과 ‘내구성’이라는 치명적인 문제에 직면합니다. 가장 극적인 예가 루미의 사인검입니다. 한 자루당 무게는 약 2.4kg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역사상 거의 모든 한손검(평균 1.1kg)보다 두 배 이상 무겁습니다. 빛을 내는 전자 부품 무게는 50g 내외로 미미하지만 진짜 무게는 이 부품들을 전투의 극한 충격에서 보호하기 위해 속이 꽉 찬 단단한 스테인리스강 덩어리(약 1.5kg)가 필요하죠. 결국 50g의 전자부품을 지키기 위해 1.65kg에 달하는 보호 구조물이 추가되는 셈입니다. 그 결과 무게 중심이 손잡이 쪽으로 완전히 쏠려, 실제 무게보다 훨씬 다루기 힘든 최악의 균형을 갖게 됩니다.
Q. 실제로 구현하기에 가장 좋은 무기는 어떤 것일까요?
A. 조이의 신칼이 제일 현실적이죠. 나머지 두 무기는 역사적 기준을 크게 벗어납니다. 미라의 곡도는 총 무게는 경량화를 거쳐도 약 5.6kg으로 추정되며, 이는 큰 날이 붙은 창 종류의 무기인 폴암(보통 2.5~4kg)보다 훨씬 무겁습니다. 칼날 전체에 심어진 마이크로 LED 스트립과 배터리가 무게를 더해, 실용적인 한계를 초과하게 된 것입니다. 루미의 사인검도 한 손으로 2.4kg짜리 검을 휘두르는 것 자체가 쉽지 않죠. 조이의 신칼은 총 무게는 약 490g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역사 속 전투용 단검(300~500g)과 거의 일치합니다. 무기 자체가 작아 손잡이(약 430g) 안에 들어가는 광섬유 조명기와 배터리(총 20g)의 무게가 전체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하기 때문에 이처럼 현실적인 무게가 가능해 보입니다.
Q. 발광 기능의 전력 공급은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까요?
A. 1시간 발광을 위해 미라의 곡도는 약 110g, 사인검이나 신칼은 약 20g의 배터리가 필요합니다. 이 수치 자체는 작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폭발이나 충격에 대비한 견고한 '밀스펙(Military-Spec)' 배터리 팩으로 만들어져야 하며, 이는 보호 케이스와 커넥터 등으로 인해 무게와 부피를 최소 2~3배 증가시킵니다.
케데헌의 또다른 주인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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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는 헌트릭스의 세 자루 무기를 통해 ‘철’이 단순한 금속을 넘어선 세계를 보았습니다. 루미의 사인검은 예술과 공학의 경계를 허물며 기술의 집약이 얼마나 감각적일 수 있는지 증명했고, 미라의 곡도는 고대의 단조 기술을 현대 재료공학의 언어로 새로 번역했습니다. 조이의 신칼은 빛과 금속을 결속해 정밀함의 극점을 완성했죠. 그 심장부에는 모두 같은 재료, 철(Fe)이 있습니다. 단단하지만 유연하고, 차갑지만 생명력을 품은 금속 <케데헌>의 또 다른 주인공이기도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