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열연 공장은 1,000℃가 넘는 뜨거운 열과 빠르게 움직이는 거대한 롤이 쉬지 않고 돌아가는 공간이라 사람이 귀로 듣고 눈으로 보는 전통적인 점검 방식만으로는 설비의 변화를 세세하게 알아내기 어렵습니다. 예전에는 진동이나 소리 같은 감각에 기대 점검했지만 사람이 다가가기 어려운 장비도 많아 위험하고 한계도 분명했습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현대제철은 기계 스스로 상태를 알려주는 ‘예지정비 시스템’을 도입했습니다. 설비 곳곳에 있는 작은 센서들이 전류, 온도, 속도, 진동 같은 신호를 계속 보내고, 시스템은 이 흐름을 읽어 고장이 나기 전에 먼저 알려주는 방식입니다.
값이 아니라 흐름을 읽는 방식
예지정비 시스템은 기준값을 넘었는지 확인하는 단순한 알람 방식이 아니라, 그 값이 시간의 흐름 속에서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를 살피는 기술입니다. 전류가 아주 조금씩 계속 오르는 변화나, 규칙적으로 반복되던 진동 리듬이 살짝 흔들리는 순간, 혹은 회전 속도가 흐트러지는 작은 징후까지도 모두 고장의 시작 신호가 될 수 있습니다. 기계가 실제로 힘을 쓰는 중인지(부하), 혼자 도는 중인지(무부하)에 따라 같은 신호라도 의미가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에 시스템은 이 조건을 먼저 구분해 분석합니다.
예를 들어 기계가 힘을 거의 쓰지 않는 ‘무부하’ 상태에서 온도가 갑자기 오르면 센서 문제일 가능성이 크고, 무거운 *코일을 돌리느라 실제로 힘을 많이 쓰는 ‘부하’ 상태에서 같은 변화가 나타나면 모터나 **스핀들/감속기 같은 실제 부품 고장을 의심할 수 있습니다. 이런 작은 변화들을 읽어내는 예지정비 시스템은 설비가 보내는 ‘이상 신호’를 빠르게 파악하고, 고장을 미리 예측하는 기반이 되고 있습니다.

코일박스 크래드롤 : 고온의 코일을 받쳐 지지하고, 변형 없이 안정적으로 유지·이송되도록 돕는 받침 구조물
룰 수치 : 설비의 상태를 모니터링, 분석하여 고장이 발생할 시점을 사전에 예측할 수 있는 ‘룰(RULE)’의 수치
감속기 치면 : 감속기 내부에서 톱니바퀴의 이빨이 서로 맞물려 회전 속도를 줄이고 큰 힘을 전달하는 핵심 접촉 부위
1열연 예지정비 시스템은 생각보다 훨씬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보고 있습니다. 전체 신호는 약 16만 개에 이르고, 이 중 실제로 고장 징후를 찾기 위해 집중적으로 관리하는 데이터만 3,195개에 달합니다. 이 데이터 분석이 가장 큰 효과를 보여준 설비가 바로 ‘길고 얇은 강판을 휴지처럼 감았다 다시 풀어주는 ***코일박스’입니다. 코일박스는 움직이는 부품이 많아 고장이 잦은 설비지만, 예지정비가 미세한 흔들림까지 정확하게 포착하면서 고장 발생을 눈에 띄게 줄이는 데 기여하고 있습니다.
*코일 : 열연·냉연 공정에서 생산된 강판을 말아서 보관·운송하는 기본 제품 형태
**스핀들 : 모터의 회전력을 공정 장비(예: 압연 롤)에 전달하는 핵심 회전 축
***코일박스 : 열연 공정 중 고온의 강판 코일을 임시로 감싸 열을 유지하며 공정 품질을 안정화하는 설비
정비 방식이 달라지는 변화
예지정비가 도입되기 전에는 고장이 언제 날지 몰라 새벽이나 주말에도 갑자기 출근해야 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또 부품의 실제 상태와 상관없이 일정 시간이 지나면 무조건 교체해야 하는 TBM(Time Based Maintenance) 방식 때문에 비용 부담도 컸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신호에 따라 ‘정상–경고–비정상–한계–고장 단계’가 나뉘고, 경고가 뜨면 미리 자재를 준비하며 비정상 단계에서는 정비 시점을 먼저 잡아둘 수 있게 됐습니다. 덕분에 돌발 고장은 크게 줄었고 작업자들은 훨씬 더 안전한 환경에서 일할 수 있게 됐습니다.
현장의 경험이 AI의 기반이 되다
지금의 예지정비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설비의 상태를 모니터링, 분석하여 고장이 발생할 시점을 사전에 예측할 수 있는 ‘룰(RULE) 기반’ 시스템입니다. 앞으로는 AI가 기존 데이터를 기반으로 스스로 흐름을 파악하며 학습하는 방식으로 발전할 예정입니다. 이를 위해 정비팀은 지난 2년 동안 어떤 룰이 언제 떴는지, 당시 어떤 점검이 이루어졌는지, 실제 고장으로 이어졌는지 등을 꾸준히 기록해 왔습니다. 이 데이터가 앞으로 AI가 학습하는 중요한 기반이 됩니다.
보이지 않는 변화가 공장을 움직인다

©현대제철 후판
현재 예지정비 시스템은 *후판, **2열연 등 여러 공정으로 빠르게 확장되고 있으며 공장의 정비 방식을 바꾸는 중요한 흐름이 되고 있습니다. 뜨거운 열기와 강한 진동 속에서도 기계가 스스로 보내는 변화를 놓치지 않게 되면서 공장은 더 똑똑하게 움직이고 있고, 작은 신호 하나를 읽어내는 능력이 공장의 내일을 바꾸는 힘이 되고 있습니다. 현대제철은 이 보이지 않는 흐름을 읽는 기술을 더욱 발전시키며 공장의 다음 시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후판 : 두껍고 넓은 철판을 만드는 생산 공정
**2열연 : 두 번째 열연 라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