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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센의 철, 독일을 탄생시킨 힘

2026.09.16

철의 시선|철로 읽는 세상👀
철은 프로이센의 철도망과 군사력을 키우고, 독일을 유럽의 산업 강국으로 이끈 핵심 소재였다. 프로이센이 이끈 독일 통일의 여정을 따라, 철이 한 나라의 역사와 산업 발전을 어떻게 움직였는지 살펴본다.

[1871년 독일제국을 구성한 연방 국가와 프로이센 왕국의 영역을 보여주는 지도

독일 제국(1871–1918) 지도. © ziegelbrenner, Wikimedia Commons, CC BY-SA 3.0, 수정·가공

 

1870년까지 통일된 독일제국은 지도 위에 없는 나라였다. 1871년 프로이센의 주도 아래 25개 지역 국가는 연방을 이루어 하나의 독일제국이 되었다. 프랑스의 자존심인 베르사유 궁전에서 거행된 빌헬름 1세 황제 선포식은 독일제국의 탄생을 상징적으로 알린 장면이었다.

안톤 베르너가 그린 1871년 베르사유 궁전의 독일제국 선포 장면

안톤 베르너, <1871년 독일제국의 선포>, 1877

 

유럽에서 빠르게 영향력을 넓혀가던 독일, 그 힘의 원천에는 철이 있었다. ‘철혈 수상’ 비스마르크의 배후에 철이 없었다면, 덴마크와 오스트리아, 프랑스를 상대로 치른 전쟁에서 승리하고 하나의 제국을 이룰 수 있었을까? 그렇기에 신생 독일을 유럽의 강대국으로 끌어올린 프로이센의 힘을 이해하려면, 그 이야기는 철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1826년 독일 에센의 크루프 제철 공장 모습
크루프 공장, 1826

 

독일 근대 주강산업의 본격적인 역사는 프리드리히 크루프(Friedrich Krupp)가 1811년 루르 지역의 도시 에센(Essen)에 주강(Gussstahl)* 공장인 크루프사를 세우면서 시작되었다. 당시 주강이라 불린 고품질 도가니강(crucible steel) 제조 기술은 영국이 앞서 있었다. 침탄법*으로 만든 강을 도가니*에서 완전히 녹여 성분과 조직이 균질한 고품질 강을 만드는 기술이었는데, 영국 업체들은 이를 철저히 비밀에 부쳤다. 프리드리히 크루프는 오랜 시행착오 끝에 1816년 주강 생산에 성공했지만, 당시만 해도 이를 뒷받침할 만큼 주강 수요가 충분하지 않았다.

 

*주강: 녹인 합금강을 거푸집에 부어 주조한 다음, 열처리하여 재질을 개량한 강철
*강철(강): 탄소 함유량이 0.035~1.7%인 철
*침탄법: 철의 표면에 탄소를 침투시켜 탄소 함량과 경도를 높이는 열처리법
*도가니: 쇠붙이를 녹이는 용기

크루프가 개발한 이음매 없는 기차 바퀴용 강철 윤대와 KRUPP 각인

크루프 철도 및 기차. © 1971markus, Wikimedia Commons, CC BY-SA 4.0

 

프리드리히의 아들 알프레드 크루프는 물려받은 주강 제조 기술을 발전시켜, 마침내 내구성이 뛰어난 고품질 도가니강의 대량생산에 성공했다. 당시 관세동맹과 철도법 제정으로 독일의 철도산업이 크게 성장했는데, 크루프사도 이 시류를 읽고 도가니강으로 철도 장비 생산을 시작했다. 특히 크루프사가 개발한 이음매 없는 기차 바퀴용 윤대*는 회사를 성장시킨 계기가 되었다.

 

철도를 통해 성장의 발판을 마련한 크루프사는 이후 군수산업으로도 사업 영역을 확대했다. 기존의 청동제 대포보다 견고하고 사거리와 파괴력이 뛰어난 주강 대포를 개발한 데 이어, 후장식 대포* 개발에도 성공하며 세계적인 무기 업체로 성장했다.

 

*윤대(輪帶): 바퀴 모양으로 된 띠. 기차에서는 주로 기차 바퀴의 바깥 둘레에 끼우는 강철 테를 뜻한다.

*후장식 대포: 포탄을 뒤에서 장전하는 형태의 대포

프로이센의 군사력을 뒷받침한 크루프사의 주강 대포

크루프 대포. Alf van Beem, 2013

 

크루프사의 대포가 위력을 발휘한 대표적인 전장이 1870년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의 스당 전투였다. 이 전투에서 프로이센 중심의 독일군은 프랑스군을 격파하고 나폴레옹 3세를 포로로 잡았다. 프랑스를 상대로 거둔 결정적인 승리는 독일 통일의 마지막 단계에 힘을 실었고, 그 결과는 글의 첫머리에서 살펴본 하나의 독일제국 탄생으로 이어졌다.

크루프사의 대포는 독일 통일 과정에서 프로이센의 힘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독일제국이 출범한 뒤 철의 역할은 군사력에만 머물지 않았다. 철은 이제 새로운 국가의 산업을 움직이는 기반이 되기 시작했다.

통일 이후 독일이 빠르게 국력을 키우는 데에는 산업의 성장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 기반 가운데 하나가 이미 독일 전역으로 뻗어 나가던 철도였다. 통일 직후인 1872년 독일의 철도 총연장은 약 2만 2천 킬로미터에 이르렀으며, 독일은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규모의 철도망을 갖추게 되었다.

이처럼 철도망이 빠르게 확장되면서 레일과 바퀴를 비롯한 각종 철도 설비에 막대한 양의 철강재가 필요해졌다. 동시에 이를 안정적인 품질로 대량 생산하고 정밀하게 가공할 수 있는 기술도 뒷받침되어야 했다. 철강산업의 발전은 철도의 확장을 가능하게 했고, 다시 철도는 사람과 원료, 제품의 이동을 촉진하며 곳곳의 도시와 산업을 성장시켰다.

대형 증기기관차를 제작하고 정비하는 근대 독일 철도 공장 내부

크루프사의 기관차 조립 공장. 《Railway Mechanical Engineer》, 1916

 

프로이센에서 축적된 제철 기술과 철도망 건설 과정에서 발전한 가공·제조 역량은 근대 독일 산업의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 철도에는 대량의 철강재뿐 아니라 기관차와 각종 기계 부품을 정밀하게 제작하고, 일정한 규격과 품질로 생산하는 기술이 필요했다. 이러한 경험이 축적되면서 독일의 기계공업과 정밀 제조 기술도 함께 발전했고, 이는 오늘날 독일이 기계공학과 정밀 제조 분야에서 경쟁력을 갖추는 데 중요한 토대 중 하나가 되었다.

독일제국의 척추가 프로이센이었다면, 프로이센의 성장을 떠받친 중요한 기반 가운데 하나는 제철산업이었다. 철을 다루는 기술은 철도와 군수산업을 넘어 기계와 제조업의 발전으로 이어졌고, 근대 독일이 산업국가로 성장하는 토대가 되었다. 서로 포개진 프로이센과 독일의 역사 발전, 그 바탕에는 철이 있었다.

철의 역할은 산업화 시대에 머물지 않는다. 시대의 요구에 따라 새로운 기술과 끊임없이 결합해온 철은 오늘날에도 건축과 자동차, 기계, 에너지 등 다양한 산업을 지탱하는 핵심 소재로 쓰이고 있다. 과거 한 나라의 산업화를 이끌었던 철은 지금도 변화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새로운 기술과 쓰임을 만나 미래 산업의 중요한 기반으로 남을 것이다.

 

 

고려대학교 사학과 최호근 교수 프로필 사진

최호근 (고려대학교 사학과 교수)

독일 근현대사를 가르치며, 기억문화 전문가로서 다양한 기념관 설립에 참여했다. 현재는 지구적 시각에서 한국인의 민족 정서 형성을 탐색하고 있다.

[moment]는 현대제철의 대내외 공식 미디어룸으로 '철의 지속가능성'을 알리고 소통합니다.
현대제철의 기술력과 철강산업의 트렌드, 나아가 '철과 인간의 삶'을 연결하는 다채로운 콘텐츠를 기획·연재 중입니다.
많은 관심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moment 편집인 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