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직구를 비롯한 국가 간 수출입에는 품목과 원산지, 수입 조건 등에 따라 관세가 적용됩니다. EU로 수입되는 철강에는 일정 물량까지 추가관세 없이 수입할 수 있는 ‘관세할당제도(TRQ)’가 적용되는데요. 정해진 쿼터 내에서는 추가관세 없이 수입할 수 있지만, 이를 초과한 물량에는 추가관세가 부과됩니다.
2026년 7월부터 EU의 철강 수입 규제가 한층 강화되면서 이 무관세 쿼터의 문턱도 높아졌습니다. 무관세로 수출할 수 있는 물량은 줄고, 쿼터를 초과했을 때 부담해야 하는 관세는 커졌습니다. 이에 따라 한정된 쿼터를 어떻게 활용하고, 필요한 물량을 얼마나 안정적으로 공급할지가 철강사의 중요한 수출 과제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EU행 철강, 높아진 무관세 문턱
EU의 철강 수입 규제는 2018년 도입된 세이프가드에서 시작됐습니다. 당시 미국이 수입 철강에 25%의 관세를 부과하면서, 미국으로 향하던 철강이 유럽으로 유입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입니다. 이에 EU는 일정 물량까지는 무관세로 수입하고, 이를 초과한 물량에는 25%의 관세를 부과하는 세이프가드를 시행했습니다.
2026년 7월부터는 기존 세이프가드를 대체하는 새로운 철강 수입 규제가 시행되고 있습니다. 연간 무관세 쿼터는 기존 약 3,382만 톤에서 1,835만 톤으로 약 46% 줄었고, 쿼터 초과 물량에 적용되는 관세는 25%에서 50%로 높아졌습니다.
우리나라에 배정된 전용 무관세 쿼터도 258만 톤에서 약 207만 톤으로 19.7% 감소했습니다. 전체 쿼터 감소 폭보다는 작지만, 한국이 단독으로 활용할 수 있는 무관세 물량이 약 51만 톤 줄어든 만큼 국내 철강업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줄어든 쿼터, 무엇으로 채워야 할까?
50%의 관세는 수출 가격 경쟁력을 크게 떨어뜨립니다. 예를 들어 관세 과세가격을 100만 원으로 단순 가정하면 50만 원의 추가관세가 발생합니다. 이를 수출자가 가격 인하만으로 모두 상쇄하려면 수출단가를 기존보다 약 33% 낮춰야 합니다. 실제 거래에서는 운임과 보험료, 유통비용 등 여러 요소가 함께 반영됩니다.
결국 EU 시장에서는 단순히 수출 물량을 늘리는 것보다 품목별로 확보된 쿼터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활용하느냐가 중요해졌습니다. 제한된 무관세 물량 안에서 고객과 제품별 수익성을 면밀히 살피고, 고부가가치 제품의 판매 비중을 높이는 전략의 중요성도 커지고 있습니다.

줄어든 쿼터만큼, 중요해진 공급 타이밍
필요한 물량을 제때 공급하는 역량도 철강사의 중요한 경쟁력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EU 철강 쿼터는 분기별로 운영되며, 통관 시점을 기준으로 차감됩니다. 한정된 쿼터를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서는 분기별 쿼터 운영 상황을 고려해 선적과 항해, 서류 준비, 통관까지 전체 일정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특히 필요한 경우 분기 개시 시점에 맞춰 일정을 조율하는 것도 쿼터 활용도를 높이는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유럽 바이어에게는 제품의 품질과 가격만큼 안정적인 공급도 중요합니다. 쿼터를 제때 확보하지 못하면 필요한 물량을 원하는 시점에 공급하기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따라 고객별 물량을 적절히 배분하고, 선적과 통관 시점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공급 운영 역량의 중요성도 커지고 있습니다.
EU 철강 수입 규제, 원산지부터 탄소까지
한편, 2026년 10월 1일부터 EU 수입자는 철강의 실제 제강·주조 국가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를 제출해야 합니다. 이는 수입 철강이 실제로 어느 국가에서 제강·주조됐는지 생산 이력을 보다 명확하게 확인하기 위한 조치입니다. 다만 현재 제강·주조 국가(Melt and Pour)가 TRQ 쿼터 차감의 기준으로 적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EU는 향후 이를 쿼터 운영 기준에 반영할 필요가 있는지 검토할 예정입니다.
탄소배출량도 철강 수출의 중요한 변수로 떠올랐습니다. 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는 수입 제품에도 EU 역내 생산 제품과 동등한 수준의 탄소비용을 적용하기 위한 제도입니다. EU 내 탄소배출권 무상할당이 단계적으로 축소되면서 CBAM 산정 시 반영되는 무상할당 조정분도 줄어들게 됩니다. 이에 따라 수입 철강이 부담해야 하는 CBAM 비용 역시 점차 확대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저탄소 철강의 중요성이 커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같은 철강 1톤을 EU에 수출하더라도 생산 과정에서 발생한 탄소배출량에 따라 수입자가 부담하는 CBAM 비용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따라 앞으로는 제품의 품질과 가격뿐 아니라 탄소배출량을 얼마나 줄였는지, 이를 뒷받침하는 데이터를 얼마나 정확하게 제시할 수 있는지도 시장 경쟁력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가 될 것입니다.
달라진 EU 시장, 현대제철의 대응은?
현대제철은 급변하는 EU 규제 환경에 맞춰 공급 안정성과 탄소 대응 역량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2026년 7월에는 유럽 주요 고객을 대상으로 ‘Customers Day’를 열고, 통상 규제가 강화되더라도 주요 고객의 물량을 우선 배정해 안정적인 공급을 이어가겠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으며, 8월에는 EU 시장과 밀접한 튀르키예 현지 고객사 대상 EU 통상 현안 설명회를 통하여 최신 정보를 제공하는 등 고객 접점도 확대하고 있습니다.
탄소 규제에 대응하기 위한 데이터 관리 체계도 강화하고 있습니다. CBAM에서는 제품의 내재탄소배출량을 실제 배출량으로 신고하거나, 관련 데이터를 확보하기 어려운 경우 EU가 정한 기본값을 적용할 수 있습니다. 다만 기본값을 적용하면 실제 배출량을 기준으로 신고할 때보다 CBAM 비용 부담이 커질 수 있는 만큼, 현대제철은 제품별 내재탄소배출량을 정확하게 산정하고 검증된 데이터를 고객사에 제공할 수 있도록 관련 체계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제품 측면에서는 저탄소강재 시장에 대응하기 위해 기존 제품보다 탄소배출량을 20% 줄인 탄소저감강판 ‘하이에코스틸’을 양산하고 있습니다. 전기로와 고로에서 생산된 쇳물을 함께 활용하는 전기로-고로 복합 프로세스를 적용해 고급 강판에 필요한 품질을 유지하면서 생산 과정의 탄소배출량을 줄인 제품입니다. 이를 통해 저탄소 철강에 대한 시장의 수요에 대응하고 관련 제품 경쟁력을 강화해 나가고 있습니다.

물량 경쟁에서 ‘품질과 데이터’ 경쟁으로
EU의 무관세 쿼터 축소와 CBAM은 철강 수출의 경쟁 방식을 바꾸고 있습니다. 이제는 많은 물량을 낮은 가격에 공급하는 것만으로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렵습니다. 품목별로 제한된 쿼터를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고부가가치 제품의 판매 비중을 높여, 필요한 물량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동시에 탄소배출량과 관련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관리해야 합니다.
국내 철강사들도 저탄소·고부가가치 제품 확대와 공급 안정성, 탄소 데이터 관리 역량 강화에 힘을 싣고 있습니다. 현대제철이 공급 안정성과 저탄소 제품, 탄소 데이터 대응 역량을 함께 강화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철강 수출의 경쟁 기준이 ‘물량과 가격’에 더해 ‘품질과 신뢰, 데이터’로 넓어지는 가운데, 변화한 규제 환경에 얼마나 효과적으로 대응하느냐가 앞으로의 시장 경쟁력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김바비
은행원으로 커리어를 시작해 일상 속 경제와 소비, 시장의 움직임을 글과 콘텐츠로 풀어내고 있습니다. 책 『골목의 전쟁』, 『멀티팩터』, 『승자의 이유』를 썼으며 유튜브 14F ‘돈슐랭’과 개인 채널 ‘바비위키’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