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인성 대표의 자택 거실
브랜드는 사람과 닮았다. 자라기도 하고 아프기도 한다. 오늘은 그 과정을 함께한 사람, 장인성 대표를 만난다. 그는 브랜딩 에이전시에서 시작해 네이버, 배달의민족을 거쳐 지금은 스테이폴리오의 대표로 일하고 있다. 각기 다른 규모와 산업의 조직에서 브랜딩을 고민해 온 그에게, 브랜딩이란 더 이상 텍스트와 이미지의 문제가 아니다.
장인성이 배달의민족에서 만든 ‘우리가 어떤 민족입니까’ 캠페인, 배민 신춘문예, 배민 치믈리에 자격시험은 단순한 마케팅이 아니라 브랜드의 생로병사를 함께한 여정이었다. 지금 스테이폴리오에서 지키려는 원칙은 무엇일까. 오늘은 그의 브랜딩 철학을 들어본다.

공식을 실체로 만들기
Q. 브랜딩 에이전시에서 처음으로 마케팅을 시작하셨을 때, 브랜딩의 ‘공식’을 배울 수 있었나요?
당시 회사의 주요 고객은 이제 막 브랜드를 만들었거나 브랜딩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기업들이었어요. 브랜드 체계를 새로 만들거나 리뉴얼을 하기도 했죠. 고객의 일을 대신 수행하는 역할인 만큼, 방법론과 프레임을 중심으로 체계적인 기획을 진행했습니다. 미션, 비전, 슬로건, 약속을 정하고 이를 도표로 멋지게 표현해야 했어요. 디자인은 심볼의 폰트와 컬러를 정해야 했고요. 그 과정에서 브랜드의 오리진¹을 만드는 공식을 배웠죠.
1) 브랜드의 오리진(Origin) : 브랜드가 탄생하게 된 배경과 문제의식, 그리고 이후 브랜드의 방향과 판단 기준이 되는 출발점.
Q. 지금도 그 공식은 여전히 유효한가요?
그때 익힌 기술과 공식은 지금도 충분히 유용해요. 덕분에 보통은 알아채기 어려운 미묘한 차이들도 느낄 수 있고요. 하지만 공식이 브랜딩의 전부는 아니에요. 오히려 그 회사의 대표가 하는 말, 실제 서비스나 제품의 완성도, 뉴스에 나오는 소식, 소문, 리뷰와 같은 것들이 브랜드에 훨씬 큰 영향을 미쳐요. 잘 만들어진 브랜드라도 뜻하지 않은 잡음에 쉽사리 망가지기도 하고요.
Q. 그렇다면 다음 회사인 네이버의 이야기도 궁금한데요. 네이버에서 일하며 배운 브랜딩 관점은 무엇이었나요?
에이전시에서는 브랜드의 스토리, 철학, 비전을 만들고 이미지화하는 것이 최종 결과였죠. 네이버에서 일해보니 그건 시작점에 불과하더라고요. 결국 이 브랜드로 무엇을, 어떻게 할 건지가 중요했어요. 사용자가 우리 서비스를 실제로 어떻게 쓰고, 어떤 방식으로 소통하는지에 대한 문제였죠. 플랫폼을 사용하는 사람이 편하게 느끼는지, 의도한 대로 작동하는지 말이죠.

마케팅 관련 도서가 정리된 책장
배달의민족에서 본 브랜드의 생로병사
Q. 배달의민족하면 떠오르는 대부분의 마케팅 캠페인에 참여하셨더라고요. 기업 문화 개선에도 힘쓰셨고요. 그 과정에서 개인적으로 오래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요?
말씀 주신 것처럼 배민 신춘문예, 배민 치믈리에 자격시험 등의 캠페인을 진행했고 기업 문화를 만드는 일에도 참여했어요. 그 과정에서 기억에 남는 건 마케팅 인턴을 채용하는 일이었어요. 모두가 즐겁게 애썼던 시절이었어요. 일하는 사람들 스스로 배달의민족을 무척 좋아하는 때였죠.


상패가 놓인 선반
Q. 대표님은 에이전시, 포털, 플랫폼, 스타트업까지 규모와 산업이 전혀 다른 조직을 경험하셨잖아요? 심지어 ‘배달의민족’은 규모가 계속해서 변하는 조직이었죠. 이에 따라 브랜딩은 어떻게 달라져야 한다고 보시나요?
배달의민족은 초기에 합류했어요. 한 50명 정도 있을 때죠. 그때는 마니아들이 좋아하고 대부분의 사람은 모르는 브랜드였어요. 다음에는 슈퍼 루키로 뜨면서 사람들의 응원을 받기도 했죠. 그 단계를 지나서 누구나 아는 국민 브랜드가 되었고, 이후에는 ‘왜 저것밖에 못 해?’라고 꾸짖음 받는 시기도 있었어요. 브랜드 성장의 모든 과정을 겪은 느낌인데요. 그 과정에는 크게 4단계가 있어요. 시작, 성장, 갈등, 재탄생이죠.
Q. ‘시작’ 단계부터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브랜드 초기 ‘마니아기’에는 소수의 고객이 열광할 포인트를 만들어야 해요. 배달의민족은 2010년대 초반 회사 ‘막내’들에 집중했죠. 팀이 야근할 때 직접 배달을 시켜야 하는 입장이고, 자취하는 초년생들은 밥을 해 먹긴 번거로우니 배달을 시키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래서 그들이 가장 그럴듯한 얼리어답터²였어요. ‘누구’를 잘 결정하고, 그들에게 어떤 태도로 다가갈지 정해서 관계를 깊이 맺어가는 것, 이게 마니아 브랜드가 해야 할 일이에요.
2) 얼리어답터(Early Adopter) : 신제품이나 새로운 서비스에 대한 수용도가 높아, 초기 경험을 통해 브랜드 인식과 확산에 영향을 주는 사용자.

배달의민족 ‘우리가 어떤 민족입니까’ 광고 캠페인의 한 장면 ⓒ배달의민족
Q. 이때부터 저도 잘 아는 시기인 것 같은데요. ‘성장’ 단계는 어땠나요?
초반 마니아층과의 관계를 탄탄히 쌓았다면, 소수의 열광을 다수의 호감으로 확장하는 시기가 와요. 많은 사람이 좋아하려면 일단 알아야 하니까 모델을 기용하고 광고를 하죠. 류승룡 배우님과 함께한 ‘우리가 어떤 민족입니까’ 캠페인 때가 그랬어요. 브랜드를 널리 알리고, 결제해도 될 만큼 믿음을 주고, UI³를 편리하게 만들고, “오늘만 쿠폰 드릴게요” 같은 제안으로 진입 장벽을 낮춰요. 알게 하고, 한번 써보게 만드는 게 대중적인 브랜드를 만드는 데 필요한 일이에요. 그렇게 국민 브랜드 반열에 오르면 사람들은 이를 점점 원래부터 있었던 공공재로 생각하게 돼요.
3) UI(User Interface) : 사용자가 서비스나 제품을 이용할 때 직접 접하게 되는 화면 구성과 조작 요소 전반.
Q. ‘우리가 어떤 민족입니까’ 광고는 뇌리에 깊이 남은 광고 중 하나에요. ‘배달의민족’이라는 브랜드가 어떤 곳인지 한눈에 보여줬어요. ‘갈등’ 단계는 어떨까요?
“이 정도는 당연히 해야 하는 거 아니냐?”, “너희가 왜 돈을 벌어”라는 반응이 나와요. 그래서 뜻하지 않은 곳에서 비난받고, 종종 사실이 아닌 것들로 사고가 생기기도 하죠. 그때부터 브랜드 담당자들이나 홍보 담당자들은 혼란에 빠지게 돼요.
Q. 어려운 시기군요. 마지막 단계인 ‘재탄생’은 어떤가요?
인간의 생로병사와 같아요. 이제 생생히 살아있는 애정 어린 생명체처럼 느껴지지 않아요. 그냥 조용히 남아있는 주민센터 같은 존재 혹은 사회에서 해야 할 일을 하는 브랜드죠. 마지막 단계는 이 혼란을 마무리하며 자신을 붕괴시키고 새로 태어나던가, 아니면 브랜드로서는 소멸기를 겪어야 해요. 이전 ‘갈등’ 시기를 지나서 자신을 붕괴시키죠. 스스로 붕괴하지 않으면 남들에 의해서 무너지는 거예요. 지금은 전처럼 패기 어린 ‘배달이친구들’이 나와서 장난스러운 행동을 하며 파격적인 캠페인을 하지는 않죠.

스테이폴리오의 4가지 가치
Q. 대표님께서 지금 운영하시는 ‘스테이폴리오’는 숙박 플랫폼으로 분류하지만, 기존 플랫폼에서 볼 수 없었던 다양한 기준과 큐레이션을 제공하더라고요. 스테이폴리오 브랜딩에서 가장 중요하게 지키는 원칙은 무엇인가요?
고객에게 발송하는 메시지와 이미지뿐만 아니라, 스테이폴리오를 통해 경험하는 서비스 전체를 중요하게 생각해요. 아침에 눈 뜨면 보이는 풍경, 밤에 들리는 소리, 먹는 음식까지요. 다른 데서 보기 어려운 멋진 스테이(숙박 공간), 그래서 꼭 경험해 볼 만한 스테이를 제공하는 것이 우리의 핵심 경쟁력이에요. 이것들이 갖춰지지 않으면 아무리 번지르르한 말을 해도 그저 멋진 말에 불과해요. 그래서 머물러볼 만한 가치가 있는 스테이를 엄선해서 제안하려고 해요. 반대로 매출을 늘리고자 기준에 맞지 않는 스테이를 제안하는 것은 삼가요.
Q. ‘스테이폴리오’만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어떤 활동을 하시나요?
중요하게 지키고 있는 건 높은 기준을 세우고, 그 기준에 맞는 스테이만 유지하는 거예요. 수록한 스테이가 많으면 매출이 늘 거라고 예상하지만, 그렇게 욕심내면 스테이폴리오가 있을 이유가 없어요. 고객들이 우리를 믿고, 눈 감고 선택해도 될 좋은 장소만 제공해요. 그게 우리의 존재 가치니까요. 그래서 엄격한 기준으로 장소를 골라서 수록하고 있는데, 이 기준은 네 가지 정도 있어요.

스테이폴리오 홈페이지 메인 화면
Q. 확실한 기준을 두고 계시는군요! 어떤 걸까요?
첫 번째는 ‘고유성’이에요. 어디를 가도 비슷한 곳 말고, ‘여긴 좀 다른데?’라는 느낌을 주는 장소가 있어요. 그 다름은 스테이가 자리한 지리적 특성일 수도 있고, 동네가 가진 분위기일 수도 있고, 집 자체가 가진 구조나 성격일 수도 있어요. 혹은 공간을 만든 호스트의 개성과 생각에서 나오기도 하고요. 이런 요소들이 모여 해당 스테이만의 고유성을 만든다고 생각해요.
Q. 두 번째는 무엇인가요?
‘디자인’이에요. 디자인을 잘 모르는 사람이 봐도 아름다운 건 아름답죠. 이런 시각적인 균형과 세련됨뿐만이 아니에요. 사용자를 위해 미리 고려해 놓은 여러 가지 요소도 디자인의 영역 중 하나잖아요? 정원의 디딤돌을 예로 들면, 적당히 설치해 둔 건지 실제로 걸어보면서 길이를 재보고 놓은 건지는 걸어보면 알아요. 다리 뻗는 곳에 디딤돌이 나와주니까 밑을 자세히 보지 않고도 자연스레 걸을 수 있죠. 이런 디자인의 차이가 있더라고요.
Q. 그런 디테일이 있는 숙소에서 묵고 나면 저도 모르게 피로가 풀릴 것 같아요. 세 번째 요소도 알려주세요.
세 번째는 ‘환대’에요. 환대란, 고객이 처음 들어오는 순간부터를 상상하는 거예요. 현관문을 열고 가방을 내려놓고 소파에 앉기까지, 머무는 장면 하나하나를 떠올리면서 ‘이 자리에 무엇이 있으면 좋을까?’, ‘책상 앞에 섰을 때 이 사람은 무엇을 기대할까?’를 고민하는 거죠. 불편하지 않도록 필요한 것들을 미리 놓아두는 겁니다. 창을 닫고 싶을 때 자연스럽게 손이 가는 손잡이, 욕실에서 씻고 나왔을 때 옆에 놓인 뽀송뽀송한 수건까지. 이런 모든 것들이 환대에 포함돼요. 환대는 고객이 머무는 시간을 얼마나 깊이 상상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생각합니다.
Q. 이런 공간에 가면 배려받는 기분이 들더라고요. 마지막은 무엇인가요?
‘경험의 확장’이에요. 이 스테이에 머물기 전의 나와 머물고 난 후의 내가 달라지는 거죠. 제주 조천의 한 숙소에 가면 원두커피가 놓여 있어요. 요즘 원두커피는 어디에나 있지 않느냐고 생각할 수 있죠. 그런데 알고 보니 스테이 호스트가 가장 좋아하는 카페의 원두예요. 숙소에서 약 200미터 떨어진 동네 카페에서 가져온 것이죠. 고객은 그곳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이번 여행만의 커피를 마시게 됩니다.

뱅크 오브 아메리카 시카고 마라톤 완주 기념 메달과 액자
Q. 여행에서는 그 지역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걸 해보는 게 좋더라고요.
이런 경우도 있어요. 테이블 위에 일회용 카메라가 놓여 있어요. 이 카메라는 여기서 찍은 사진을 집으로 가져갈 수 있다는 신호이기도 하죠. 다만 오래된 카메라라 사용법부터 찾아보게 되고, 자연스럽게 실내보다는 밖으로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게 카메라를 들고 조천 마을을 한 바퀴 걷게 됩니다. 당근밭과 귤밭을 지나 마을을 돌아본 그 경험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 때와는 다른 나를 만들어줘요. 매일 반복하는 하루가 아니라 오늘은 달랐다고 기억하게 만드는 순간이죠. 이런 경험의 확장과 고유성, 디자인, 환대가 함께 어우러져 스테이폴리오만의 특별함을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브랜딩의 기준
Q. 대표님께서 ‘마케터들의 선배’로 유명하시죠. 브랜딩이나 마케팅 일을 잘하고 싶어 하는 후배들에게 꼭 점검해 보라고 말해주고 싶은 것이 있다면요?
‘사용자 관점에서 보고 있는지’예요. 기본 중의 기본이죠.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기보다, 듣고 싶을 만한 이야기를 해야 해요. 예상할 수 있는 질문에 답까지 준비해 보는 거죠.
후배 마케터들을 보며 안타까울 때가 있어요. 논리적인 마케터에게 낭만이 없고, 낭만적인 마케터에게 논리가 없어요. 광고 효율을 따지며 신규 고객을 획득하는 일을 맡으면 기계적으로 AB 테스트에만 의존하고, 브랜딩 일을 맡으면 계산은 할 줄 모르죠. 이렇게 해서는 문제를 제대로 풀 수 없어요.
Q. 지금 시점에서 ‘브랜딩’이란 무엇인가요?
브랜드와 대상 사이의 생각과 느낌, 그리고 경험의 총합이에요. 어떤 상품을 보여주느냐도 브랜딩이고, 가격이 얼마인지도 브랜딩이죠. 할인은 하는지, 고객 센터는 전화받는지 혹은 문자로 응대하는지도 모두 브랜딩이에요. 오늘의 이 인터뷰까지요.

장인성 대표가 말하는 ‘브랜딩’은 실제로 서비스를 겪으며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것이다. 에이전시에서의 브랜딩 공식, 네이버에서의 서비스 관점, 배달의민족에서 겪은 브랜드의 생로병사, 그리고 지금 스테이폴리오에서 지키고 있는 기준까지. 서로 다른 환경 속에서 브랜딩이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살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매거진 1편 「장인성의 ‘마케터로서 성장하는 삶’」편에서는 장인성 대표가 직접 경험해 온 마케터의 삶과 태도에 대해 깊이 들어본다. 일을 대하는 관점부터 후배 마케터들에게 전하고 싶은 조언까지, 마케팅을 업으로 살아가는 삶에 대한 현실적인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다.
이어지는 영상에서는 장인성 대표가 바라보는 2026년 AI 마케팅 트렌드 세 가지를 다룬다. 기술이 앞서가는 시대 속에서 마케터와 브랜드는 무엇을 고민해야 할지, 그의 시선으로 정리한 인사이트를 영상으로 확인해 보자.
매거진 1편 :
장인성의 ‘마케터로서 성장하는 삶’

장인성 대표의 3 Pick! 영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