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봉 하나가 놓인 공간은 누군가에게는 운동을 시작하는 장소이고, 누군가에게는 친구를 만나는 놀이터다. 정한별은 그 공간을 더 많은 사람에게 열기 위해 움직여 왔다. 저스트펀 크루의 정기 운동 모임과 온라인 튜토리얼을 통해 경험을 나누고, 철봉공원 조성에도 직접 나섰다.
그가 맨몸운동을 시작했을 때는 국내에 참고할 자료도, 마음 놓고 연습할 공간도 많지 않았다. 해외 영상을 느리게 돌려보며 동작을 익히던 경험은 낡은 철봉을 바꾸고 새로운 운동 공간을 만드는 활동으로 이어졌다. 하남 미사철봉공원에서 철봉과 함께 바꿔 온 풍경, 그리고 앞으로 만들어 가고 싶은 변화를 들었다.

운동장 한편에서 시작한 맨몸운동
Q. 맨몸운동을 시작한 계기와 매력은 무엇인가요?
고등학교 3학년 때 수능을 앞두고 친구들과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내 몸을 스스로 컨트롤할 수 있다는 점이 멋있었어요. 비보이 퍼포먼스를 좋아했는데, 철봉 위에서 맨몸운동을 하는 모습이 춤처럼 보였죠. 춤은 잘 못 추지만 운동은 노력하면 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친구들이 보여준 해외 스트리트워크아웃 영상을 보며 본격적으로 빠져들었습니다.
Q. 활동을 시작할 당시 국내 맨몸운동 환경은 어땠나요?
운동할 공간과 배울 자료가 모두 부족했어요. 학교 운동장이나 동네에 있던 철봉은 점점 사라지고 있었고, 한국어로 된 튜토리얼도 거의 없었습니다. 해외 영상 역시 동작을 설명하기보다 성공한 모습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았죠. 그래서 영상을 다운로드해 느리게 돌려보면서 동작 하나하나를 직접 분석했습니다.

Q. 그렇게 익힌 운동을 영상으로 공유하셨는데, 한별님의 콘텐츠를 보고 운동을 시작한 사람도 있나요?
몇 년 전 방송에서 김지훈 배우님이 머슬업을 연습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어요. 제가 튜토리얼에서 설명한 자세와 비슷해 혹시 제 영상을 보신 건 아닐까 싶어 DM을 보냈죠. 실제로 제 영상을 보고 있었다는 답변을 받았고, 이후 만나서 함께 운동하며 머슬업 동작을 알려드리기도 했어요. 그렇게 5년째 함께 운동하는 사이가 됐습니다.(웃음)


개인의 경험을 공간으로 확장하다
Q. 전국 최초의 철봉공원을 조성하셨다고요. 처음 공원이 필요하다고 느낀 계기는 무엇인가요?
2015년부터 매주 일요일 아침마다 친구들과 철봉 운동 모임을 열었습니다. 당시에는 튼튼한 철봉을 갖춘 공간이 많지 않아 주로 동네 중학교 운동장을 찾아야 했어요. 해외 영상에서 철봉으로만 구성된 공원을 볼 때마다 우리 동네에도 이런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처음부터 공원 조성을 추진한 것은 아니었어요. 우선 눈앞의 문제부터 바꿔 보기로 했습니다. 2016년 동네에 있던 나무 기둥의 낡고 흔들리는 철봉을 보고 강동구청에 민원을 넣었죠. 이후 구청에서 철봉 교체에 대한 의견을 물어와 해외 철봉 스테이션 사례와 원하는 높이·길이를 제안했습니다. 제안한 형태가 그대로 적용되지는 않았지만 실제로 철봉이 바뀌는 모습을 보며 작은 의견 하나로도 운동 환경을 개선할 수 있다는 걸 경험했어요.

저스트펀 크루 정기 운동 모임
Q. 그 경험이 실제 철봉공원 조성으로 이어지기까지 어떤 과정이 있었나요?
2016년 말부터 강동구청 게시판에 철봉공원의 필요성과 조성 방안을 담은 제안서를 꾸준히 올렸습니다. 하지만 온라인으로 제안서를 보내는 것만으로는 일이 쉽게 진행되지 않았어요. 2017년 1월에는 전국의 철봉 운동인들을 만나고 지역축제 기획자의 조언도 구한 뒤, 1월 17일 강동구의원실을 직접 찾아갔습니다.
당시 설득에 가장 도움이 됐던 건 1년 넘게 이어진 운동 모임의 기록이었습니다. 제가 운영하던 저스트펀 크루에는 인근 학교 학생부터 소방관, 경찰관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했어요. 매주 일요일 오전 10시 천일중학교 운동장에서 20~30명이 턱걸이와 팔굽혀펴기, 코어 운동 등을 함께했습니다. 이렇게 실제로 운동하는 사람들이 있고, 꾸준히 모이고 있다는 사실이 공원의 필요성을 보여주는 근거가 됐죠.
제안서와 운동 모임 기록을 함께 보여드린 끝에 의원님을 설득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 2017년 7월경 공사가 시작됐고, 같은 해 9월 23일 강동구 약수터공원에 첫 철봉공원이 문을 열었어요. 돌아보면 운동할 곳을 찾던 사람들이 필요를 알리고, 기록을 모아 직접 설득한 과정이 하나의 공간으로 이어진 셈이죠.

2017년에 조성된 강동구 약수터공원 철봉공원

2019년에 조성된 동두천시 철봉공원
Q. 첫 철봉공원 조성 이후에는 어떤 지역으로 활동을 넓혀 가셨나요?
2019년 초에는 동두천시의원의 제안으로 두 번째 철봉공원 조성에 참여했습니다. 강동구와 동두천시, 하남시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기획에 참여했고, 노원구·부산·청주 등 다른 지역에서는 공원 조성 과정에 자문을 했어요. 하남시에도 철봉공원이 생기면서 직접 기획하거나 자문하는 방식으로 참여 범위를 넓혀 왔습니다.
Q. 철봉공원이 생긴 뒤, 공간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달라졌나요?
집 앞에 철봉공원이 있어서 지나갈 때마다 이용하는 사람들을 한 번씩 살펴보는 버릇이 생겼어요. 아이들은 놀이 공간으로 쓰고, 어르신들은 스트레칭을 하고, 학생들은 운동을 하더라고요. 누군가에게는 운동기구이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놀이기구인 거죠. 같은 공간이 사람에 따라 서로 다른 방식으로 쓰이는 모습을 보면서 철봉공원의 가능성을 실감했습니다.

2025년에 조성된 하남시 철봉공원
단단함 위에 쌓아온 시간
Q. 맨몸운동을 오랫동안 이어 오셨는데,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요?
맨몸운동은 난이도가 높은 운동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철봉 같은 기구를 이용하더라도 결국 내 몸과 감각으로 움직임을 완성해야 하거든요. 원하는 동작이 한 번에 되는 것도 아니고, 얼마나 꾸준히 몸을 단련해 왔는지가 그대로 드러납니다. 저도 처음에는 배울 자료가 부족해 해외 영상을 느리게 돌려보며 동작을 분석해야 했어요. 그래서 새로운 동작을 익히려면 반복해서 시도하는 끈기와 인내심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Q. 늘 손으로 잡고 몸을 지탱하는 철봉에서 어떤 철의 특성을 느끼시나요?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단단함과 안정감이에요. 예전에 나무 기둥으로 된 철봉은 흔들림이 컸지만, 철제 기둥의 철봉은 튼튼하게 몸을 지탱해 줍니다. 철봉이 안정적이어야 더 다양한 동작에도 도전할 수 있죠. 그런 점에서 철의 단단함은 새로운 움직임을 가능하게 하는 바탕이라고 생각해요.
Q. 철의 그런 특성을 한별님의 활동에 비유한다면 어떤 점이 닮았을까요?
철이 쓰임에 맞게 다양한 형태로 가공된다는 점이 제 활동과 닮았다고 생각해요. 저도 부족한 운동 환경과 정보를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직접 개선하려고 노력했거든요. 친구들과 운동하는 데서 출발했지만 운동 영상과 크루 활동, 철봉공원 조성과 행사 등으로 활동의 범위를 넓혀 왔습니다. 한 가지 모습에 머무르지 않고 새로운 쓰임을 찾아 왔다는 점에서 비슷한 것 같아요.

Q. 맨몸운동은 한별님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제 인생을 바꾼 운동이에요. 처음에는 친구들과 운동장 한편에서 재미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맨몸운동을 통해 만난 사람들이 제 곁에 남았고, 제가 하는 일과 생계도 운동으로 이어져 있죠.(웃음) 처음 철봉을 잡았을 때만 해도 이렇게까지 제 삶의 일부가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Q. 앞으로 맨몸운동을 통해 어떤 변화를 만들어 가고 싶으신가요?
처음 제가 느꼈던 맨몸운동의 재미를 더 많은 사람과 나누고 싶어요. 철봉공원이 생긴 뒤 아이부터 어르신까지 각자의 방식으로 공간을 이용하는 모습을 보면서, 운동을 시작할 장소와 계기를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는 걸 느꼈습니다. 앞으로도 더 많은 사람이 맨몸운동을 경험할 수 있도록 그런 공간과 기회를 계속 만들어 가고 싶습니다.

정한별(저스트펀 크루)
운동할 곳도, 배울 자료도 부족했던 시절 철봉 하나에서 맨몸운동을 시작했다. 저스트펀 크루를 운영하며 운동 콘텐츠와 커뮤니티를 만들고, 철봉공원 기획과 자문으로 더 많은 사람이 몸을 움직일 수 있는 공간과 문화를 넓혀가고 있다. 인스타그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