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팬과 칼을 친구처럼 곁에 두고, 익숙한 맛 위에 새로운 겹을 쌓아가는 정영훈 쉐프를 만났다. 그는 안성재 셰프가 운영하는 ‘모수 서울’에서 오랜 시간 실력을 쌓고, 현재 베트남 음식점 ‘안홍마오’와 브런치 카페 ‘밀스(Mils)’를 운영하고 있다.
정영훈 셰프에게 철팬은 쉽게 길들여지지 않는 만큼, 오래 곁에 두며 삶을 단련시키는 스승 같은 존재이며, 칼은 갈수록 날이 선다는 점에서, 끝없이 자신을 다듬는 그의 태도를 닮았다.
# 안홍마오의 여름의 맛, ‘삼복 보양 쌀국수’
여름을 맞이해 특별한 메뉴를 준비했다고 들었어요. 이번에 소개할 ‘삼복 보양 쌀국수’는 어떻게 기획했어요?
‘더운 여름에 사람들이 어떤 음식을 먹고 싶을까?’, ‘저희를 찾아주시는 단골 손님들에게 무엇을 더 드릴 수 있을까?’라는 고민에서 출발했어요. 시원한 냉면도 좋지만, 반대로 속을 따뜻하게 데워줄 수 있는 음식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지금은 쌀국수를 주로 판매하고 있는데, 여기에 여름철 대표 보양식인 삼계탕의 요소를 접목해 보면 어떨까 싶어 이번 메뉴를 개발하게 됐어요. 저희를 자주 찾아주시는 분들이 여름을 건강하게 보내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습니다.
비주얼이 엄청 화려해요. 이건 의도한 건가요?
손님들이 메뉴를 봤을 때 직관적으로 ‘먹고 싶다!’는 느낌이 드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번 메뉴도 시각적인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미각적으로는 낙지, 전복, 닭 같은 재료 본연의 풍미가 살아 있어서 건강한 맛을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만족하실 거예요.
낙지, 전복, 닭 등, 이 요리의 주요 재료들은 ‘보양’에 특화된 재료들이잖아요. 이 재료를 선정한 이유가 있나요?
가장 큰 이유는 ‘건강’이에요. 사람들이 음식을 고를 때 ‘이걸 먹으면 몸에 이로울까?’라는 기준으로 선택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런 기준에서 낙지, 전복은 언제나 우선순위에 올라가는 식재료라고 생각해요. 대표 메뉴인 쌀국수의 닭 육수를 더해 육수를 더해 새로운 조합으로 완성했어요.
‘요리에 겹을 쌓는다’라는 표현을 쓰시더라고요. 이번엔 ‘겹’을 쌓는 걸 어떻게 실현했는지 궁금해요.
‘요리의 겹을 쌓는다’라는 건 재료의 맛이 하나하나 더해지면서 단순한 맛을 넘어선 깊이를 만들어 내는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이번 메뉴는 기존에 제공하던 쌀국수 맛을 기반으로, 삼계탕을 만들 때 사용되는 황기, 당귀, 대추 같은 한약재를 넣어 육수를 우렸어요. 그래서 드실 때 은은하게 한약재 향이 느껴질 거예요.
이번 요리에서 ‘익숙한데 새롭다’라고 느낄 수 있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쌀국수를 응용한 형태지만, 맛과 향은 삼계탕의 익숙한 풍미가 느껴진다는 점이에요.
처음 메뉴 소개를 요청했을 때, ‘기품 있게 여름을 견디는 한 그릇’이라는 문장이 인상 깊었어요.
‘무더위 속에서 나를 위한 작은 사치를 누려봐라’라는 의미를 담았어요. 합리적인 가격으로, 좋은 재료로 만든 음식을 나에게 선물한다는 느낌으로 즐기셨으면 해요.
플레이팅할 때 특별히 신경 쓴 부분은 무엇인가요?
보통은 요리할 때 ‘덜어내는 방식’을 선호해요. 예를 들어, 저희 쌀국수에 고명을 많이 얹지 않고, 고명을 따로 제공하는 것처럼요. 이번에는 ‘푸짐하게 즐기세요!’라는 메시지를 담아 시작적으로 강렬하게 표현했어요.
# 더 어려운 쪽을 선택하다
파인다이닝 업계를 떠나 ‘안홍마오’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제가 20대 내내 파인다이닝 업계에서 일했었어요. 누군가는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을 ‘사이클 선수’ 같다고 하더라고요. 저도 공감했어요. 치열하게, 가장 높은 곳을 향해 달리는 사람들이니까요. 하지만 어느 순간 ‘내가 더 잘할 수 있는 건 뭘까?’를 고민하게 됐어요. 이곳에서 최고가 되긴 어렵겠다는 자기 객관화도 됐고요.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내가 잘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가자’고 생각했죠. 제 자원과 실력을 효율적으로 써서 정확한 방향으로 앞으로 나아가고 싶어요. 내 것을 만들어 보고 싶고요.
요리할 때 새로운 맛에 도전하는 것에 대한 망설임이 없는 편이에요?
추구하는 맛과 색깔에는 일관성이 있어야 하죠. 다만, 직업인으로서 새로운 시도를 받아들이고 도전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봅니다. 익숙한 음식만 선호하는 분들도 있지만, 새로운 경험을 원하는 분들도 많기 때문에 열린 마음으로 고민하고 있어요. 새로운 것을 어떻게 나에게 적용하고, 또 사람들에게 어떻게 전달할 지 자주 생각하고요. 개인적으로는 익숙한 걸 좋아하긴 해요. 맨날 비슷한 거 먹거든요(웃음).
문득 궁금해요. 언젠가 파인다이닝을 다시 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지금, 이 순간 제가 요리를 하며 손님들과 소통하면서 줄 수 있는 감동의 선이 있다고 생각해요. 다만, 파인다이닝을 하려면 더 높은 기준이 필요하다고 느끼고요. 그래서 조금 더 성장하고 단단해지면서, 손님들과 더 많은 것을 주고받을 수 있는 시점이 온다면, ‘이젠 내가 더 좋은 것을 드릴 수 있겠다’라는 판단이 설 때, 언젠가는 파인다이닝을 다시 해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어요.
무엇인가를 그만두고 선택할 때, ‘쉐프님만의 기준’이 있어요?
무엇인가를 선택할 때 ‘더 어려운 쪽을 선택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이건 저에게 적용되는 거고요. 정답은 아니에요. 기왕 태어났는데 업계 탑을 목표로 하는 게 맞지 않나 싶고요(웃음). 그걸 위해 계속 노력하고 있어요. 하루 16시간씩 일해도 지치지 않는 건 제가 충분히 감당할 수 있고, 할 만하다고 느끼기 때문이에요. 힘든 부분도 있지만, 그게 그렇게 큰 허들이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제가 선택한 길이니까요. 좋아하는 일을 해도 결국 99%는 힘들고, 1%의 보람을 느끼며 버텨내는 거라고 생각해요.
정영훈 쉐프에게 요리란 무엇인가요?
제게 요리는 ‘말 없는 대화’같아요. 요리에 담은 의미와 생각을 접시에 담아 드리고, 그걸 드시면서 제 마음에 공감해 주셨으면 좋겠거든요. 또 제가 추구하는 시각적인 멋이나 분위기도 함께 느껴지면 좋고요. 개인적으로는 슴슴하면서도 단백하고, 깊은 맛이 우러나는 요리를 선호해요. 그런 뉘앙스가 접시 위에 전해졌으면 좋겠어요. ‘약간 비어 있는 맛’이랄까요. 여백이 있는 맛이 좋고, 그걸 같이 느껴보셨으면 해요.
# 정영훈 셰프의 가장 친한 친구, ‘철팬과 칼’
철팬을 ‘스승’ 같다고 표현한 게 인상 깊어요.
철팬은 다루기 정말 어려워요. 익숙해지기까지 많은 노력이 필요하고, 그 과정이 제 삶과 많이 닮았어요. 요리를 처음 배울 때도 하나씩 단계를 밟아가며 익숙해지는 과정이 있었고, 철팬 역시 마찬가지였어요. 처음에는 어색했던 것들이 점차 익숙해지고, 그 안에서 더 새로운 걸 배우고, 더 큰 가능성을 발견하며 제 삶이 확장되어 가는 과정과 닮아 있다고 느꼈습니다. 인생에 필요한 많은 것을 알려주는 것 같아서, ‘스승’ 같아요.
어떤 팬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요리의 맛도 달라져요?
확실히 달라집니다. 팬의 열전도율, 얼마나 오랫동안 열을 머금을 수 있는지에 따라 음식의 맛이 달라져요. 예를 들어, 차가운 재료를 팬에 올렸을 때 팬의 온도가 쉽게 떨어지지 않고 열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면, 음식에 열이 균등하게 전달되어 맛과 퀄리티가 훨씬 좋아져요. 또 하나 예를 들자면, 열을 충분히 머금은 팬에 채소를 빠르게 볶으면 수분이 덜 생기고 아삭한 식감이 살아납니다. 반면 약한 열에서 천천히 볶으면 채소에서 수분이 많이 나오고 식감도 달라지죠. 그래서 좋은 철팬을 사용하는 건 과학적으로도 이유가 분명해요. 열을 많이 머금고,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는 팬이 좋은 팬입니다.
이번 메뉴를 조리할 때 사용한 도구들이 맛을 어떻게 극대화했는지 궁금해요.
샐러리, 당근, 파 같은 채소는 스테인리스 팬에 센불로 빠르게 볶아 아삭한 식감을 살렸어요. 육수를 끓일 때는 철 냄비를 사용하는데, 열 보존력뿐 아니라 위생적인 면에서도 효과적이라 실제 한식에서도 육수 냄비로 많이 사용되긴 해요.
요리 도구를 고를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준은 뭐예요?
저는 ‘닦기 편한가?’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요. 주방을 항상 깔끔하게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고, 깨끗한 팬에서 요리해야 음식도 더 맛있다고 믿어요. 그래서 팬이나 냄비를 고를 때도 잘 닦이는지, 세척 후 형태가 변하지 않는지 등을 중요하게 봅니다.
정영훈 쉐프에게 ‘철’은 어떤 존재인까요?
철이라는 재료는 요리사에게 떼려야 뗄 수 없는, 친구 같은 존재랄까요. ‘철’이라는 소재로 만든 도구 중에서 가장 많이 쓰는 게 ‘칼’인 것 같아요. 제가 가지고 있는 칼만 해도 수십 자루는 되거든요. 또 철은 무르면서도 강하잖아요. 그런 특성이 제가 추구하는 삶의 방향과도 닮았어요. 겉은 유연하지만, 내면은 단단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 정영훈 쉐프의 ‘삼복 보양 쌀국수’ 조리 과정 따라가기
1. 닭 손질 후 양념에 재우기
생닭을 필요한 부위만 남기고 깨끗이 손질해주세요. 이 닭을 양념에 재워 익힌 후에 꺼내줄 거예요.
2. 전복, 낙지 데치기
미리 손질해둔 전복과 낙지를 끓는 물에 익혀주세요.
3. 닭 익히기
살라맨더에 닭을 충분히 익힌 후에 토치로 껍질 부위를 더 바삭하게 구워요.
4. 채소 볶기
철팬에 강한 불로 미리 썰어둔 파, 당근 등의 채소를 볶아줍니다.
5. 플레이팅
삶은 쌀국수 위에 숙주나물, 익힌 채소, 닭, 낙지, 전복을 차례대로 올려줍니다. 여기에 육수를 붓고 고수, 페페론치노 등을 올려 마무리해요.
6. 완성
여름엔 든든하게. 정영훈 셰프의 손끝에서 완성된 여름의 보양 한 그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