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해방촌에 자리한 코리안 컨템포러리 다이닝 ‘소울’. 한식 기반의 김희은 셰프와 양식에서 출발한 윤대현 셰프가 함께 이끄는 이곳은 한국의 식문화를 지금의 감각으로 재해석하는 레스토랑이다. 2023년 미쉐린 가이드 서울에서 1스타를 획득한 이후, 현재까지 그 영광을 이어가고 있다.
오픈 키친 바 좌석을 중심으로 요리의 시작부터 완성까지를 숨김없이 드러내는 공간에서, 두 셰프는 ‘우리가 살아오며 겪은 음식’을 제철 재료로 풀어낸다.
보는 미감, 먹는 식감까지 설계한 겨울꽃 한 접시
Q. 오늘 소개해 주실 겨울 제철 요리는 어떤 메뉴인가요?
희은. 저는 ‘홍시 소스를 곁들인 올방개묵 냉채’ 를 준비했어요. 겨울 제철인 대봉감을 충분히 후숙해 홍시로 사용했어요. 감미료를 사용하는 대신, 감이 가진 자연스러운 단맛을 그대로 쓰고 싶었어요.
Q. 접시 구성이 굉장히 인상적인데요.
희은. 손님이 처음 접시를 받았을 때 시각적인 ‘와우’ 포인트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꽃의 얼굴을 연상시키는 형태로 구성했고 안쪽에는 오방색을 표현한 다섯 가지 채소와 소고기 숙채를 넣었어요. 겉에는 쌀뜨물을 가미해 만든 올방개묵으로 감싸고 위에는 단호박 칩과 피클링한 머스터드 시드를 올려 식감의 대비를 주었고요.
Q. 하나의 작품 같아요. 그렇다면 요리를 구성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지점은 무엇이었나요?
희은. 식감이 단계적으로 느껴지도록 했어요. 다섯 가지 숙채는 아삭함, 겉에 쌓여져 있는 올방개묵은 부드러움, 위에 올라가는 튜일*은 바삭함. 이 다양한 식감이 자연스럽게 이어져요. 특히 이 머스터드 시드는 얼핏 보면 캐비어인가 싶었지만 비건 분들도 드실 수 있게 머스터드 씨앗을 피클링화해서 올린 거예요. 씹으면 오독오독하면서 팡팡 터지는 느낌이 있어서 기대한 것 이상이죠. 손님들이 식감들이 다채로워서 재미있다고 해주세요.
*튜일 : 얇게 구워 바삭한 식감을 더하는 장식용 반죽.
Q. 요리에 세심한 정성이 들어간 부분이 한두가지가 아닌 것 같아요.
희은. 맛과 향의 조화도 생각했어요. 대봉의 단맛이 과해지지 않도록 한라봉 즙을 더해 산미의 균형을 맞췄고요. 겨울에는 미나리 대신 쑥갓을 사용해, 계절에 맞는 향을 더했습니다. 그리고 재료를 버림 없이 쓰는 것도 중요해요. 포항초는 줄기와 잎을 나눠 사용해 각각의 역할을 살렸어요.
겹겹이 쌓아 올린 겨울 제철의 깊이
Q. 이번에는 윤대현 셰프님께서 준비해주신 요리를 살펴볼까요.
대현. ‘된장 뵈르 블랑을 곁들인 우엉 도미 피티비에*’ 입니다. 이번 요리는 겨울에 가장 맛이 좋아지는 재료들을 중심으로 구성했어요. 도미는 수온이 내려갈수록 살이 단단해지고 맛이 좋아지는 생선이에요. 우엉도 지금부터 제철로 쭉 즐길 수 있는 재료고요. 포항초는 줄기와 잎을 나눠서 사용했어요. 줄기에서는 단맛을 살렸고, 겨울에는 잎이 크게 자라지 못하는 대신 맛이 더 농축되거든요. 그래서 이파리에서 오는 풍미도 따로 담아보고 싶었어요.
*피티비에 : 프랑스 전통 요리로, 속 재료를 감싸 구워내는 요리.
Q. 줄기와 잎의 맛도 구분해서 써주셨군요! 무스에 냉이도 써주셨더라고요.
대현. 네. 도미를 손질하고 남은 부위로는 무스를 만들었고요. 여기에 냉이를 다져 넣어서 향을 더했어요. 냉이는 보통 봄나물로 생각하시지만, 요즘은 기후 변화 때문에 겨울부터 맛이 좋아지는 경우도 많아요. 지금 가장 맛이 좋은 재료를 쓰는 방향으로 접근해봤습니다.
Q. 프랑스 요리인 피티비에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들었어요. 원래 소울에 있던 요리인가요?
대현. 네. 형식은 피티비에에서 가져왔지만 페이스트리* 대신 우엉을 조려서 카라멜라이징**했어요. 겉은 서양 요리처럼 보이지만 한국의 제철 재료들로 채운 메뉴에요. 그리고 아직 공개한 적 없는 요리에요. 오늘 인터뷰에서 처음 선보이는 요리랍니다.
*페이스트리 : 버터와 밀가루로 만든 겹층 반죽. 구우면 바삭하고 결이 살아나는 것이 특징으로, 파이·타르트·크루아상 등에 사용.
**카라멜라이징 : 재료의 당분을 열로 갈색화해 풍미를 더하는 과정.
희은. 이 요리는 특히 반을 갈랐을 때 단면이 중요한데요. 겹겹이 쌓인 재료들이 보여주는 이야기와 버려지는 재료 없이 모두 사용하는 구조까지 포함해서 저희가 가장 만족한 요리 중 하나예요. 저는 이 요리가 ‘역대급 생선 디쉬’라고 느꼈어요.
함께 완성하는 소울만의 요리
Q. 두 분이 생각하는 ‘제철’이란 무엇인가요?
대현, 희은. 달력에 적힌 계절보다 지금 시장에서 가장 맛있는 상태로 존재하는 재료라고 생각해요. 지금 구할 수 있고, 지금 가장 맛있는 것. 그걸 안 쓸 이유가 없죠.
Q. 지금 가장 맛있는 재료를 찾으려면 계속 재료를 접해야겠군요. 식재료는 어떻게 구하시나요?
희은. 얼마 전에 부산의 한 레스토랑과 콜라보를 한 적이 있었는데요. 보통은 서로 잘하는 걸 나눠서 코스를 구성하잖아요. 그런데 이번에는 다른 방식으로 접근했어요. 아예 즉흥적으로 시장에 가서 그날 눈에 보이는 재료로 메뉴를 만들어보자고 했죠. 메뉴판에는 이름 대신 물음표만 적어두고요.
대현. 그날 시장에서 살아 있는 민물 새우를 봤는데, 그걸 보는 순간 ‘이걸 튀겨볼까, 갈아서 퓌레로 만들어볼까’ 같은 생각들이 자연스럽게 떠올랐어요. 책을 보면서 구상하는 것과는 확실히 다르더라고요. 요리사는 결국 재료를 많이 보고, 직접 만져봐야 생각하지 못했던 아이디어가 나온다고 느껴요.
희은. 그래서 저희는 계절마다 시장을 찾으려고 해요. 경동시장이나 산지에 직접 가서 장을 보고, 명인분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 자체가 요리의 시작이라고 생각해요.
Q. 공동 대표로 일하시는 분들에게 항상 궁금한 점이 있어요. 두 분은 어떻게 역할을 나누어 요리하시나요?
대현. 딱 잘라서 역할을 나누지는 않아요. 메뉴마다 조금씩 달라요. 어떤 요리는 반반으로 아이디어가 나오기도 하고, 어떤 메뉴는 7 대 3, 혹은 3 대 7 정도로 한 사람이 더 많이 주도하기도 하죠. 중요한 건 두 사람 모두 만족하지 않으면 메뉴로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에요.
희은. 예를 들어, 홍시 소스를 활용한 디쉬는 제가 조금 더 많이 관여한 메뉴이고, 된장 뵈르 블랑 우엉 도미 피티비에는 대현 셰프가 중심이 되어 만든 요리예요.
Q. 셰프로서 행복을 느낄 때는 어떤 순간인가요?
희은. 너무 많은데요. 그래도 가장 큰 건, 제가 만든 음식을 손님이 맛있게 드시는 표정을 직접 보는 순간이에요. 그래서 저희는 홀과 주방이 오픈된 구조가 좋아요. 손님이 어떤 속도로 음식을 드시는지, 어떻게 음미하는지를 직접 보고, 말을 하지 않아도 표정으로 소통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요리가 완성된다고 느껴요.
접시가 정말 깨끗하게 돌아올 때도 큰 행복이에요. 소스 하나 남지 않고, 빵으로 싹싹 긁어 드신 흔적이 보이면 ‘아, 이 요리를 정말 잘 드셨구나’ 하고 마음이 벅차요. 그때 “인생 생선이에요.”, “인생 메인이에요.” 같은 말을 들으면 잠자리에 들어서도 계속 설레고요.
대현. 또 하나의 행복은, 이 레스토랑의 경험이 한 사람에게서 끝나지 않을 때에요. 커플로 방문한 손님이 “부모님을 꼭 모시고 오고 싶다”고 말하거나, 실제로 가족과 함께 다시 찾아주실 때가 있거든요. 그건 단순히 ‘맛있었다’가 아니라 이 공간과 시간이 누군가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았다는 뜻이라서 그럴 때 가장 큰 보람을 느껴요.
손끝의 감각을 완성하는 철 도구들

윤대현 셰프의 핀셋, 고운 체 등 철제 조리 도구
Q. 주방에서 특히 애착을 갖고 사용하는 철제 조리 도구가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대현. 애착 도구라고 하면 정말 많은데요. 그중에서도 ‘요리용 핀셋’은 항상 제 손처럼 쓰는 도구예요. 이게 없으면 요리를 시작하기가 불안할 정도예요. 재료를 집고, 옮기고, 미세하게 조정하는 모든 순간에 쓰이니까 손 대신 섬세함을 전달해 주는 도구라고 생각해요. 아침에 출근했는데 핀셋이 안 보이면, 그걸 찾을 때까지 일이 진행이 안 될 정도예요. 연필 없이 글을 써야 하는 느낌이랄까요.
그리고 ‘고운 체’도 굉장히 중요해요. 육수나 소스를 최대한 맑고 깔끔하게 걸러내야 할 때 쓰는데, 철로 이렇게 촘촘하게 만들어진 체는 아직 국내에서 찾기 어려워서 일본에 가서 직접 사 오기도 해요. 비효율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이 과정을 거쳐야 저희가 원하는 맛의 밀도가 나와요.

김희은 셰프의 스크래퍼, 스패츌러 등 철제 조리 도구
희은. 저는 스크래퍼*와 스패츌러**를 가장 많이 써요. 도마 위에서 재료를 정리할 때, 또는 소스나 크림을 접시에 정돈할 때 이 도구들을 쓰면 한 번에 ‘정리가 됐다’는 확신이 생겨요. 그게 저한테는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한 리셋 버튼 같아요.
스패출러는 단순히 뒤집는 도구가 아니라 손끝으로 재료의 익힘이나 탄성을 느끼게 해주는 도구라고 생각해요. 이 재료가 지금 어떤 상태인지, 조금 더 가야 하는지 멈춰야 하는지를 손에 전해주는 역할이죠.
*스크래퍼 : 재료를 모으고 정리할 때 쓰는 평평한 조리 도구.
**스패츌러 : 재료를 뒤집거나 섞으며 익힘을 확인하는 도구.
Q. 철 도구가 주방에서 특히 중요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희은. 주방에서는 위생과 내구성이 가장 중요해요. 나무나 다른 소재에 비해 철은 세척이 쉽고, 관리가 명확하죠. 그리고 무엇보다 요리사에게 안정감을 줘요. 무게감, 열전도율, 손에 전해지는 감각이 일정하니까 계속해서 같은 퀄리티의 요리를 만들 수 있어요.
대현. 철 도구는 차갑지만, 그만큼 믿을 수 있는 재료예요. 손끝의 감도가 좋다는 건 작업 속도와 완성도에 직접적으로 연결되고요. 키보드 타건감이나 마우스 터치감이 중요한 것처럼, 요리사에게 철 도구는 감각을 유지하게 해주는 기본 장치라고 생각해요.
소울답게, 넓고 깊게 나아가는 새해
Q. 앞으로 두 분이 함께 이루고 싶은 방향이나 목표가 있다면요?
희은. 저는 요즘 ‘더 소울다워지는 것’에 대해 많이 생각해요. 예전부터 마음에 남아 있던 말이 ‘넘버원이 되기보다 온리원이 되자’였어요. 트렌드는 너무 빠르게 바뀌고, 따라가다 보면 금방 흐려질 수 있다고 느껴요. 그래서 지금은 소울다이닝이 “이 집은 이래서 특별해.”라고 누군가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스토리가 더 단단해지는 시간이었으면 해요. 매일 최선을 다하는 건 쉽지 않지만, 적어도 오늘 요리에 후회는 남기지 말자는 마음으로 계속 가고 싶어요.
대현. 저는 조금 욕심을 내자면, 확장과 깊이를 동시에 가져가고 싶어요. 하고 싶은 게 정말 많거든요! 다양한 방식으로 시도도 해보고 싶고, 동시에 지금 하고 있는 것을 더 잘하고 싶기도 해요. 넓게 가되 얕아지지 않고, 깊이 들어가되 닫히지 않는 상태랄까요. 그게 쉽지 않다는 걸 알지만 그래서 더 해보고 싶은 것 같아요.
Q. 독자분들께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나요?
대현. 파인다이닝에 대한 오해를 조금은 바꾸고 싶어요. 아직도 비싸고 허세를 부리기 위한 공간이라는 인식이 있는 것 같거든요. 가격만 놓고 보면 그렇게 보일 수 있어요.
하지만 그 접시 하나가 나오기까지의 과정과 선택, 그리고 버려지는 수많은 시도를 함께 본다면 그 가치는 다르게 느껴질 거라고 생각해요. 파인다이닝은 결국 ‘가격’보다 ‘경험’에 가까운 문화라고 봐요.
Q. 재료 준비에서 요리 과정을 직접 살펴보니 정말 납득이 가네요. 그렇다면 독자분들께서는 파인다이닝을 어떻게 즐기면 좋을까요?
대현. 공연이나 전시처럼 생각해 주셨으면 해요. 1년에 한두 번이라도 비싼 밥을 먹는 곳이 아니라 하나의 문화를 경험하는 자리로 받아들여 주신다면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한국에는 정말 실력 있는 셰프들이 많아요. 이제는 그에 맞는 문화적 수요와 이해도 조금씩 함께 자라났으면 좋겠어요. 미식도 결국은 사람들과 함께 성장하는 문화라고 믿습니다.
김희은 셰프의 ‘홍시 소스를 곁들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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