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자동차의 안전함을 논할 때는 에어백의 개수나 범퍼의 소재 등을 이야기하죠. 어떤 철판이 사용됐는지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아요. 하지만 사고 순간, 정말 우리를 지켜주는 건 바로 보이지 않는 철판 한 장입니다. 이 철판이 얼마나 가볍고 강한지는 자동차의 안전, 연비, 더 나아가 미래를 좌우하죠."
충남 당진, 바로 현대제철 제2냉연공장에서 철판이 만들어집니다. 이곳에는 철판을 단순히 펴는 작업을 넘어 미세하게 조절하고 정밀하게 다듬는 초정밀 기술을 다룹니다. 기술력의 핵심인 6-high 6-stand 설비, 레이저 용접, 그리고 초고장력 강판 이야기를 함께 풀어봅니다.
당진제철소 제2 냉연공장 ©현대제철
철판을 누르는 '롤러', 6-high 6-stand란?
‘6-high 6-stand’라는 이름만 들으면 왠지 ‘공돌이’들만 아는 기계처럼 느껴지죠. 하지만 원리는 꽤 단순합니다. 철판을 얇고 매끈하게 눌러주는 롤러(roller) 가 6개 붙어 있는 기계입니다. 이 철판은 공장에 들어올 땐 두껍고 단단하지만, 이 설비를 통과하면서 얇아지죠. 마치 반죽을 밀대로 여러 번 밀어 균일하게 펴듯 이 장비는 수백 톤의 힘으로 철판을 눌러줍니다. 그 과정에서 철판의 두께는 머리카락만큼 얇게 조절되고 표면도 매끈해집니다.
중요한 건 이 장비가 단순히 ‘세게 누르는’ 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워크롤, 백업롤, IMR(Intermediate Roll)이라는 각각의 롤러가 섬세한 역할을 나눠서, 압력과 온도, 롤 간의 간격까지 정밀하게 제어합니다. 이 덕분에 철판 전체가 같은 두께로, 뒤틀림 없이, 매끄럽게 만들어지는 거예요.
이 설비는 현대제철이 현대차와 함께 미래차 시장을 대비해 준비한 설비로, 당시 국내에서는 아무도 본격적으로 시도하지 않았던 기술입니다. 초고장력강 양산을 위한 세계 최초의 조합형 설비였죠. 지금은 국내에서 초고장력강을 가장 많이 생산하는 핵심 라인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철판을 ‘잘 이어붙이는 기술’, 레이저 용접의 활약
제2냉연공장의 또 하나의 자랑은 레이저 용접 설비입니다. 초고장력강은 기존보다 훨씬 단단한 철판이라 용접하기 어려웠습니다. 특히 연속 생산을 위한 코일과 코일 연결 부분에서는 기존 방식으로는 판파단(연결된 강판의 중간부가 끊어지는 것)이나 열 손상 문제가 잦았죠.
하지만 레이저 용접은 다릅니다. 좁은 부위에 에너지 밀도를 순간적으로 높여 붙이는 방식이기 때문에, 철판 자체의 변형을 줄이고 연결 부위가 매끄러워집니다. 덕분에 철판의 이음부가 터져 공정이 멈추는 일없이 안정적으로 생산해 불량률을 확 줄였습니다.
레이저 용접은 단순한 설비가 아니라, 초고장력 강판이라는 민감한 소재를 연속 생산 가능한 산업용 소재로 바꾼 핵심 기술입니다. 기존에는 실험실 수준에서나 가능하던 품질을, 공장에서 안정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게 된 것이죠.
초고장력 강판, 얇지만 강한 철의 매직
이 모든 기술은 결국 초고장력 강판을 위해 존재합니다. 이 강판은 기존보다 2~3배 강하지만 더 얇고 가볍게 만들 수 있어요. 차량의 무게를 줄이면서도, 사고 시 충격을 견디는 뼈대 역할을 하죠. 특히 충격에 약한 전기차나 수소차의 배터리는 차체 바닥에 있기 때문에 하부 충격에 강한 소재가 절실해요. 그래서 초고장력 배터리 커버라는 특수 부품에도 이 강판이 들어갑니다. 배터리를 보호하는 필수적인 존재가 되었죠.
초고장력 강판을 활용한 자동차 배터리 ©현대자동차
하지만 이 소재는 까다롭습니다. 단단한 만큼 잘 눌러지지 않고, 열에 민감해서 쉽게 깨질 수도 있거든요. 그래서 6-high 6-stand의 정밀 제어와 레이저 용접의 깔끔한 연결이 필수입니다. 당진제철소는 이 두 가지를 완벽하게 갖춘 몇 안 되는 철강 공장입니다.
기술은 조용히, 단단하게 자동차를 바꾼다
현대제철 당진제철소 제2냉연공장은 단순히 철을 가공하는 곳이 아닙니다. 철판 한 장이 어떻게 미래차의 기술로 이어지는지를 증명하는 현장입니다. 이곳은 전통적인 제철소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미래차에 최적화된 고부가가치 철강 생산지로 진화 중이죠.
기술은 언제나 거창하진 않습니다. 얇게 잘 눌러주는 것, 깨지지 않게 잘 이어붙이는 것, 뒤틀림 없이 정확하게 만드는 것. 그 단순한 반복 속에 현대제철의 진짜 기술력이 숨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기술은 지금도 조용히 자동차를, 그리고 우리의 미래를 바꾸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