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속에는 빛나는 금속이 숨어 있다.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그 금속은 우리 삶을 결정한다. 바로 철이다. 인류는 철을 두드리며 역사를 열었고, 철길을 놓으며 산업혁명을 가속했다. 오늘날 철은 또 다른 무대를 차지한다. 더 이상 땅 위에 깔린 레일이나 거대한 기계의 톱니가 아니라, 우리의 머릿속 ‘뇌’라는 가장 은밀한 공간에서 인간을 다시 비추고 있다.
MRI, 자기공명영상은 강력한 자기장을 이용해 뇌 속을 스캔한다. 이 장면의 조용한 주인공은 철이다. 혈액 속 헤모글로빈은 철을 품고 있고, 뇌세포에는 우리 몸에 있는 철분을 저장하는 페리틴(ferritin, 우리 몸에서 철(Fe)을 저장하고 조절하는 단백질 복합체)이라는 단백질 속에 철이 저장된다. 실제로 미국의 뇌과학자 제프 두인(Jeff H. Duyn)은 “MRI 영상은 만화경이라기보다 뇌 속 철, 페리틴에 잠자고 있는 철의 떨림이 우리에게 전하는 이야기다"라는 말을 남길 정도다. 뇌 영상 속에서 철은 단순한 부산물이 아니라 신호의 핵심이다. 화면 위에 드러나는 뇌의 영상은 사실상 철이 전해주는 메시지다. 병의 그림자와 기억의 흔적, 감정의 파동까지 모두 철의 떨림 속에서 드러난다.
철은 단순히 병리학의 지표로 머물지 않는다. 과장이 아니라, 철은 인간의 정신을 가능케 하는 원소다. 도파민을 합성하는 과정에서 철은 필수적인 조연으로 등장한다. 철이 없다면 우리의 집중력은 흐려지고 감정의 색채는 바랜다. 반대로 적절한 철은 기억을 견고하게 하고, 감정을 선명하게 한다. 아이들이 언어를 배우고 상상력을 펼칠 수 있는 것도, 노인이 오랜 기억을 간직하는 것도 결국 철의 은밀한 뒷받침이 있기에 가능하다. 철은 단순히 영상의 신호가 아니라, 도파민 시스템의 핵심인 것이다. 물론 그 때문에 과도한 철은 운동 회로를 교란해 파킨슨병 위험을 높이긴 하지만 말이다.
비유컨대, 철은 뇌 속에서 보이지 않는 오케스트라다. 페리틴 안에 저장된 철은 작은 자석처럼 산화와 환원의 리듬을 타며, 신경세포에 산소를 건네는 숨은 무대 감독이다. 동시에 철은 도파민 합성의 첫 음을 울려 배움과 동기의 선율을 만들어내고, 과도한 불꽃이 튀지 않도록 신경망의 합주를 조율한다. 철이 없다면 음계는 흐트러지고 기억은 희미해지겠지만, 그 작은 금속 입자들이 제자리에 있을 때 뇌는 한 편의 교향곡처럼 완성된 조화를 들려준다.
흥미롭게도, 철과 뇌 사이에는 문명사의 깊은 아이러니가 숨어 있다. 철의 발견은 인류에게 돌보다 단단하고 구리보다 강한 도구를 쥐게 했고, 이는 곧 인간을 ‘도구의 인간’으로 규정짓는 첫 장면이었다. 우리는 철로 땅을 갈아 곡식을 길러냈고, 철로 창과 칼을 벼려 전쟁을 치렀으며, 철로 다리와 기둥을 세워 도시와 제국을 일으켰다. 철이 불 속에서 구워져 나오던 순간마다, 인간의 문명은 또 한 걸음을 내디뎠다. 그렇게 축적된 기술과 언어, 사회적 협력은 인간의 뇌를 자극하고 키워냈다. 돌도끼와 청동기 시절의 두개골보다 철기 시대 이후의 인간 두개골이 더 커졌다는 사실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의 흥미로운 대목은, 그렇게 커진 뇌가 제 기능을 다하기 위해서조차 다시 철을 뇌 안에서 필요로 했다는 데 있다. 문명을 만든 금속이, 인간의 신경세포 안에서도 다시 연료로 쓰이고 있는 것이다. 페리틴 안에 저장된 철은 도파민 합성의 불씨가 되고, 혈액 속 철은 산소를 머리끝까지 실어 나르며 시냅스 간의 불꽃이 조화를 이루도록 돕는다. 인간이 대지를 갈기 위해 손에 쥔 쇠스랑의 이빨이 뇌 속에서도 다시 반짝이며 감정과 사고의 리듬을 이끌어내고 있는 셈이다.
다시 말해, 철은 밖에서는 도구를 낳아 인간을 만들었고, 안에서는 신경의 교향곡을 지휘하며 그 인간의 뇌를 강화한다. 불과 망치 속에서 두드려져 나온 쇠붙이가 문명의 외형을 빚었다면, 뇌 안에 숨어 있는 철은 인간 정신의 내면을 빚어낸다. 철은 가장 오래된 물질이자 가장 은밀한 매개체로서, 인간의 손과 뇌, 도구와 정신, 문명과 의식을 하나의 보이지 않는 궤도로 연결한다.🧠
과학자들은 철의 긍정적인 역할을 점점 더 발견하고 있다. 뇌 발달기에 철이 부족하면 인지 능력과 사회적 성숙이 늦어지고, 충분히 공급되면 신경망은 촘촘히 연결된다. 적정한 철은 기억을 선명하게 하고, 집중력을 유지하며, 감정을 안정시킨다. 시험을 앞둔 학생의 몰입, 무대 위 연주자의 긴장과 평정심, 노인의 하루를 지탱하는 차분한 정서. 산소를 운반하는 혈액이 없으면 생명이 꺼져버리듯, 철이 없다면 뇌의 이 모든 정신적 불꽃은 꺼져버린다. 하지만 균형을 잃은 철은 위험하다. 지나치게 쌓인 철은 산화 스트레스를 일으켜 뉴런을 손상시키고, 알츠하이머 치매 같은 신경퇴행성 질환을 촉진한다. 그러나 이 위험은 ‘철 자체’의 본질이라기보다는 균형의 문제다. 불이 집을 덥히기도 하고 태워버리기도 하듯, 철도 생명의 연료이자 파괴의 불씨다.
결국 철은 물질을 넘어선다. 지구 깊은 곳에서 태어나 인간의 손으로 끌려 나온 금속은, 다시 인간의 뇌 깊은 곳에서 삶의 방향을 결정한다. 철은 문명의 뼈대였고, 지금은 정신의 기둥이다. 인간을 만든 금속은 이제 인간을 읽는 금속이다.👫
질문은 단순해진다. 철이 없다면, 인간은 무엇일까? 철 없는 인간은 기억 없는 존재, 감정 없는 껍데기일지 모른다. 반면 철과 함께라면 우리는 배우고, 느끼고, 꿈꾼다. 철은 가장 흔한 금속이면서 동시에 가장 특별한 금속이다. 철은 우리를 무장시키는 금속이 아니라 우리를 이해하게 하는 금속이다. 그것은 뇌를 읽는 언어이고, 마음을 드러내는 매개체이며, 인간과 세계를 잇는 다리다. 철을 통해 인간은 자기 자신을 비춘다. 그리고 거기서 우리는 다시 묻는다. 철 없는 인간은 누구일까, 인간일 수 있기는 했을까?
KAIST 뇌인지과학과 교수 정재승
인간의 의사결정, 뇌-기계 인터페이스, 뇌를 닮은 인공지능을 연구하고 있는 뇌과학자.KAIST 뇌인지과학과 교수이자 융합인재학부 학부장을 맡고 있다. 현재『과학 콘서트,『열두 발자국,『인간 탐구 보고서』등 다수의 저서를 통해 대중과 소통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