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미 협상이 지지부진한 사이 우리 철강업계는 50% 관세 충격을 정면으로 맞고 견디고 있습니다. 미국이 철강에 관세를 부과한 지 2025년 9월 말 기준 약 6개월이 지났습니다. 한국산 철강 수출액은 예년보다 크게 줄면서 관세 타격이 현실화되고 있는데요. 한국무역협회 무역통계에 따르면 올해 1~8월 대미(對美) 철강 수출액은 25억2,214만 달러(3조5,592억원)로 지난해 같은 기간 보다 16% 감소했습니다. 전체 철강 수출액 감소율(6.8%)의 2배 이상입니다.
항만에서 컨테이너 선박이 수출입 화물을 처리하는 모습 ©클립아트코리아
상황이 이러한데 미국 정부는 철강·알루미늄과 자동차부품 관세 부과 대상을 확대하겠다고 나섰죠. 2025년 9월 16일(현지시간) 미국 연방 관보에 따르면 상무부는 철강이나 알루미늄을 사용해서 만든 파생 제품 중 관세 부과 대상에 추가할 품목에 대한 의견을 수렴하고 있습니다. 가전이나 건설자재 등 제품까지 영향권에 들어가 우리 철강 제품을 사들이는 고객들의 불확실성도 커진겁니다.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 ©미 상무부
한국은 미국을 상대하는 것만으로도 벅찬 상황인데요. 유럽연합(EU)도 돌연 미국과 마찬가지로 철강 관세를 50%로 인상하겠다고 나섰습니다. 자유무역 분업 체제 중심이었던 전 세계가 이제 자국 산업을 우선시하는 보호주의 분위기가 강해지고 있는 거죠. EU 집행위원회는 10월 7일 유럽 철강업계 보호 대책을 담은 규정안을 발표했습니다. 수입산 철강 제품에 대한 무관세 할당량은 1년에 1,830만t(톤)으로 제한합니다. 이를 초과하는 물량은 기존에는 25% 관세를 부과했는데요. 이를 50%로 늘리겠다는 겁니다. 유럽의 철강업계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라는 게 집행위의 주장입니다.
한국 철강 기업에게 EU는 시장은 중요한 시장입니다. 한국무역협회 자료를 보면 지난해 EU에 수출한 철강 수출액 규모는 44억 8,000만 달러로 미국(43억 4,700만 달러)보다 많았습니다. 모든 품목에 50% 관세를 부과하는 미국과 달리 EU는 쿼터제도가 있지만 우리 철강 업계로서는 부담이 커지는 겁니다. 다행히 당장 시행한다는 건 아닙니다. 내년 6월 말 EU 회원국들이 만나 합의를 통해 7월부터 본격적으로 시행할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주요국들이 자국 보호우선주의에 속도를 내니 우리 정부도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되겠죠.
정부도 관세 어려움을 겪는 철강업계 지원을 위해 고심 중입니다. 먼저 ‘철강 수출 공급망 강화 보증상품’을 신설했습니다.구체적인 안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철강업체는 철강을 수출할 때 수입사의 대금 지불 문제와 환율 변동 등의 리스크에 노출되는데요. 정부가 철강업계와 리스크를 분담하겠다는 겁니다. 약 4,000억 규모의 보증 효과를 낸다는 게 정부의 설명입니다.
현대제철 냉연강판 코일 ©현대제철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2025년 9월 19일 현대제철 등 철강업계와 간담회를 갖고 보증상품 신설을 알리면서 “대미 관세 협상에서 철강 관세 면제를 강하게 요구했지만, 관철이 어려웠던 점에 대한 업계의 이해를 구한다”라며, “미국 측과 관세 완화 협의를 지속하고 관세 후속 지원 대책 이행, 우회덤핑 등 불공정 수입재 방어도 적극 추진해 나가겠다”라고 말했습니다.
철강업계 구조조정도 유도할 계획입니다. 구조조정이라 하면 부정적인 이미지가 떠오르기도 하는데요. 단순히 생산을 줄이자는 긴축정책이 아니라 미국의 관세 정책이나 중국의 저가 철강 공급 과잉 등 대외 악재를 견디고 우리 철강업계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접근입니다.정부는 2025년 초 현대제철 등 업계와 함께 ‘철강산업 경쟁력 강화 태스크포스(TF)’를 꾸렸는데요. 이르면 2025년 10월에 TF에서 논의한 철강산업 구조조정 방안을 내놓기로 했습니다.
현대제철이 생산한 H형강의 모습 ©현대제철
TF는 먼저 중국의 저가 공세로 경쟁력을 잃은 철강 제품 생산은 줄이기로 했습니다. 동시에 중국이 따라오지 못한 고부가가치 제품 생산에 집중한다는 전략입니다. 경쟁자가 따라오지 못하는 고부가가치 제품 생산에 집중한다면 미국의 고율 관세에 대한 타격도 줄일 수 있다고 판단한 겁니다. 정부는 세제와 금융 등 각종 인센티브를 제공해 철강업계의 고품질 제품 생산 비중을 늘리도록 유도하기로 했습니다.
고온 가열된 철강 슬래브가 압연 공정을 거치고 있다.
정부는 제품 고도화에 나서지 않는 기업에는 감산과 통폐합을 유도할 계획입니다. 정부는 국내 생산 시설의 30~40%는 정부가 정한 고도화 기준에 못 미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업계 일각에서는 국내 제철소의 10~20%가량이 통폐합될 것이라는 관측도 내놓습니다. 정부는 이 과정에서 인수합병(M&A)이 원활하게 이뤄지도록 세제 혜택과 공정거래법상 담합 예외 적용 등을 검토하기로 했습니다.
이기자의 핵심 체크!
✓ 미국의 고율 관세로 인한 국내 철강업계 타격 현실화
✓ 정부, 철강 수출 과정에서 발생하는 위험 분담하는 보증상품 신설
✓ 철강업계가 고부가가치 제품에 집중할 수 있도록 인센티브 제공할 계획
이광수 기자
본업이 음악이라고 우기는 경제부 기자. 평일에는 기사를, 주말에는 곡을 씁니다. 발표한 곡으로는 <어디있니> <아름다운> <혼자 남겨지고 싶어서 그래> <하리보> <늦은 사랑>이 있습니다. YTN 라디오, SBS BIZ, 이데일리TV 등에서 경제 뉴스를 전달했습니다. 지금은 SBS 러브FM <박연미의 목돈연구소>에 출연중입니다. @egwangs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