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로 심각해지는 기후위기 앞에서 인류의 미래가 불투명해지고 있다. 영화에서나 보던 산불, 폭우, 홍수, 가뭄, 폭풍 등이 인류의 삶에 실존적 위협을 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인류는 하늘을 나는 차를 만들고, 인간의 노동력을 대체할 인공지능 로봇을 탄생시켰으며, 암을 정복할 수 있는 신약을 개발하거나 수명 연장을 위한 의학 기술을 발전시키고 있다.
이처럼 첨단 기술이 난무하는 세상이지만, 강해지는 폭염에 수십만 명이 목숨을 잃고, 폭우로 인한 홍수로 수백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하며, 통제할 수 없을 만큼 거세진 산불이 온 동네를 집어삼켜도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고작 하늘을 바라보며 기도하는 것뿐이다. 이것이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기후위기의 현실이다.
지금 전 세계는 기후위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탄소중립이라는 거대한 전략을 꺼내 들었다. 탄소중립은 간단히 말해, 인간이 인위적으로 배출한 탄소의 양과 육상 생태계나 해양 같은 지구 시스템의 구성 요소들이 흡수하는 양을 같게 하거나, 인위적인 흡수 기술을 투입해 같게 만들어 대기 중에 더 이상 탄소가 쌓이지 않도록 하는 개념이다.
2024년 기준으로 인간이 배출한 연간 탄소 배출량 *40.9 GtCO₂(409억 톤)중 약 21%는 지구 시스템의 육상 생태계가 흡수하고 29%는 해양이 흡수한다. 그리고 남은 50%가 대기 중에 쌓이고, 남은 50%가 0이 되면 탄소중립이 실현되는 것이다.
탄소중립의 핵심은 인간이 배출량을 줄이는 것뿐 아니라, 육상 생태계와 해양 등 지구 시스템이 스스로 흡수할 수 있는 탄소량에 달려 있다. 배출은 인간이 조절할 수 있지만, 지구 시스템의 흡수 능력은 인간이 직접 통제할 수 없다. 앞으로 지구가 얼마만큼의 탄소를 더 흡수할 수 있는지는, 인류가 얼마만큼의 탄소를 추가로 배출할 수 있을지를 가늠하는 가장 근본적인 한계선이 될 것이다.
*GtCO₂ : 이산화탄소 10억 톤 단위
우리가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철이 지구 시스템의 탄소 흡수 능력을 결정짓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철은 탄소가 아닌데?’라고 반문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맞다. 철은 탄소 자체는 아니기에 탄소 순환에 직접 포함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철은 대기·해양·육상 생태계 전반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생지화학적 과정에 깊이 관여하며, 지구가 흡수하는 탄소의 양을 증가시키거나 감소시키는 보이지 않는 조율자(regulator)로 작동한다. 지구 전체 질량 기준으로 두 번째로 풍부한 원소라는 점을 떠올리면, 철이 지구 시스템에서 이처럼 중요한 역할을 맡는다는 사실은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니다.
*생지화학적 과정 : 생물과 토양·물·대기 같은 무생물 환경 사이에서 일어나는 화학적 순환·변화
이제 철이 어떻게 지구 시스템의 탄소 순환에 관여하는지 살펴보자. 먼저 대기 중의 철은 바람을 타고 해양으로 이동하여 바다의 탄소 흡수량에 영향을 끼친다. 예를 들면, 사하라사막과 고비사막에서 날아온 먼지에 포함된 철은 멀리 이동하여 남극해, 북극해, 적도 태평양처럼 질소와 인은 풍부하지만 플랑크톤이 부족한 해양에 떨어지면, 플랑크톤이 그 철을 비타민처럼 사용하여 엄청난 번식을 시작한다. 이렇게 늘어난 플랑크톤은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유기 탄소로 바꾸며, 그중 일부는 입자가 되어 바다 깊은 곳으로 가라앉아 탄소를 장기적으로 저장할 수 있게 된다. 전 지구 규모의 탄소 순환과 철 순환이 상호작용하여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줄이는 것이다.
사하라에서 출발한 먼지는 해양뿐만 아니라 육상생태계의 탄소흡수에도 영향을 끼친다. 대서양을 건너 아마존에 도착한 ‘철을 품은 먼지’는 아마존에서 상대적으로 영양이 빈약한 토양에 영양분을 보충해 줌으로써 숲 전체의 생산성을 높여 지면에서의 탄소 흡수량이 늘어나는 결과를 보이기도 한다.
식물은 토양의 도움에 상관없이 철이 있어야 광합성을 활발히 할 수 있다. 식물이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려면 *엽록소와 **전자전달체가 있어야 하며, 이 과정의 핵심 요소가 바로 철이다. 철이 부족하면 광합성 효율이 떨어져 이산화탄소 흡수량도 감소하고 생산성도 떨어지게 된다. 뿐만 아니라 육상 생태계 탄소 흡수에서 가장 중요한 영양소인 질소를 고정하는 과정에서도 철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뿌리혹박테리아와 같은 ****질소고정균이 실제로 활발히 질소를 고정하기 위해서는 철 기반의 효소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철이 없으면 질소 고정이 되지 않아 식물이 잘 자라지 않고, 결국 탄소 흡수량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물론 철이 늘 지구 시스템의 탄소 흡수량을 증가시키지는 않는다. 과도한 철 공급은 오히려 육상과 해양 생물의 영양 균형을 망가뜨려 탄소 흡수 효율을 낮출 수 있다. 그래서 적절한 양의 철이 중요한 것이다.
*엽록소 : 빛 에너지를 흡수해 광합성을 시작하게 하는 식물의 초록색 색소
**전자전달체 : 광합성과 호흡 과정에서 전자를 주고받아 에너지를 전달하는 분자
***뿌리혹박테리아 : 식물 뿌리에 공생하며 질소를 고정해 식물이 사용할 수 있게 돕는 박테리아
****질소교정균 : 대기 중 질소(N₂)를 암모늄 등 생물이 이용 가능한 형태로 바꾸는 미생물
최근 들어 이러한 철의 생지화학적 과정을 활용하여 탄소 흡수량을 늘리려는 시도가 있다. 바로 공학 기술을 활용하여 기후 위기를 막으려는 시도인 기후 공학이다. 예를 들면 해양 철 비료(Ocean Iron Fertilization)를 철이 부족한 바다에 소량 뿌려 플랑크톤을 늘리고 이산화탄소 흡수를 강화하는 방식이다. 적은 양의 철로도 큰 생태 반응을 일으킬 수 있어 효과가 크다는 평가를 받지만, 플랑크톤 급증 뒤 산소 고갈이나 생태계 교란 같은 부작용 가능성도 있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한편 육상에서는 식물이 활용할 수 있는 형태의 철이 부족할 경우 광합성과 질소 고정이 약해지는 점에 착안해, 토양의 철 이용성을 높여 *식생의 탄소 흡수 능력을 향상시키려는 연구도 진행되고 있다. 이처럼 철을 활용한 기후 공학은 해양과 육지를 아우르며 자연의 탄소 흡수 과정을 인위적으로 강화하려는 시도지만, 철 투입의 양과 방식에 따라 효과와 위험이 크게 달라지기 때문에 여전히 과학적 연구가 더 필요한 상황이다.
*식생 : 어떤 지역에 자라고 있는 모든 식물의 집합
철이 지구 곳곳에서 펼치는 이 긴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탄소중립이라는 거대한 과업 속에서 철이 단순한 금속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철은 인류 문명을 일으킨 재료였고, 도구와 기계, 산업과 도시를 가능하게 한 힘이었지만, 그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지구 생명의 질서를 움직여 온 보이지 않는 손이었다. 바다에서는 미세한 플랑크톤에게 생명의 숨을 불어넣어 대기의 숨결을 가다듬고, 육지에서는 숲과 흙과 미생물의 세계를 이어 붙이며 생명체가 숨 쉴 수 있는 환경을 지탱해 왔다.
우리는 이제야 비로소 ‘탄소중립’이라는 목표를 향해 나아가며, 오래된 조율자를 다시 발견하고 있다. 탄소를 줄이는 기술만으로는 기후 위기를 넘어설 수 없다. 지구가 스스로 숨을 고르고 다시 균형을 되찾을 수 있도록 돕는 일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철은 자연이 오래전부터 품어 온 지혜이며, 인간이 앞으로의 길을 설계할 때 귀 기울여야 할 ‘숨은 열쇠’다.
기후학자 정수종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환경관리학과 교수이자 서울대 기후테크센터 센터장으로, 기후변화 모델링과 탄소순환을 중심으로 한 기후·환경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