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의 형태를 감상한다는 것’은 단순히 이동 수단으로 보는 것을 넘어, 인간이 창조한 기능미와 조형미의 절묘한 조합을 마주하는 일이다. 나는 늘 자동차의 실루엣, 비율, 소재, 디테일이 만들어내는 디자인 속에서 감성과 기능, 아름다움과 기술이 어떻게 어우러져 하나의 조화로운 결합을 만들어내는지 관찰하는 것을 즐긴다.
©현대 자동차 현대 포니와 현대 아이오닉5 스케치
대부분의 자동차는 '철’이라는 물질을 중심으로 제작된다. 요즘은 플라스틱, 알루미늄이나 탄소섬유, 복합소재 등을 광범위하게 도입하면서 자동차를 이루는 철의 절대적인 비중은 줄어들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차체의 뼈와 살’을 이루는 주요 소재로 철을 완전히 대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자동차 디자인에서 철은 마치 아름다운 작품으로 완성되길 기다리는 도화지와도 같다. 물성은 차갑고 단단하지만, 그 가능성은 뜨겁고 유연하게 존재해야 한다. 철판은 디자이너의 가능성을 제한하는 재료가 아닌, 상상력을 펼쳐 세상을 창조하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
자동차 디자인은 산업 디자인 분야 중에서도 가장 조형미가 부각되는 분야에 속한다. 단순히 기능을 충족시키는 구조물과 보기 좋은 겉모습을 만드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사람의 감각을 사로잡는 실루엣과 볼륨, 그리고 감성을 자극하는 디테일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런 면에서 ‘단단한 물질인 철’을 다뤄 부드러운 인상을 주는 일은 아이러니한 동시에 참 매력적인 작업이다. 디자인 언어로 따지자면, ‘기능미’는 차갑고도 이성적인 감각이라면, ‘조형미’는 따뜻하고 감정적인 감각에 가깝다. 자동차 디자이너는 바로 그 경계 위에서, 철이라는 차가운 재료로 감각적인 온도를 만들어내야 한다.
얇은 두께의 강판이 만들어내는 곡률은 단순한 곡선이 아닌 디자이너가 의도한 긴장감과 볼륨감을 표현해낸다. 최대한 정교하고 끊임없이 계산해 만들어내야 할 것 같은 자동차 디자인은 사실 그 어떤 산업디자인의 결과물들보다 수치적인 결과물과 거리가 멀다. 오늘날의 자동차 디자인은 단순한 이동 수단의 디자인을 뛰어넘어, 브랜드의 철학과 가치를 담아내는 일종의 조형 예술로까지 발전했다. 차량의 비율과 실루엣, 면의 처리, 빛과 그림자의 흐름까지 모두 감정가 이미지에 영향을 미친다.
ⓒ기아자동차
자동차가 단순한 제품을 넘어 하나의 문화를 형성해 존재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단단함과 유연함, 기능성과 아름다움. 서로 다른 여러 면모가 하나의 실루엣 안에서 공존하며 조화를 만들 때, 우리는 비로소 자동차를 '영혼이 담긴 하나의 창조물’로 바라보고 이입을 하게 된다.
나는 특히 클래식카의 아름다운 디자인을 보며 차체에서 '생명력’과 '철의 감성’을 강하게 느낀다. 두껍고 단단하고 무겁기만 할 것 같은 이 소재로 과거의 디자이너들은 섬세하고 유려하며 감각적인 결과물을 창조해냈다. 그리고 그런 형태는 단지 심미성뿐만이 아닌, 주행 중 안전성, 공기역학, 엔진 냉각 등 엔지니어링적인 실험적 기능과 맞물린 결과물이 되었다.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는 철학을 가장 아름답게 해석해 내고 있는 것이다. 1960년대 이탈리아의 쿠페, 1980년대 독일의 합리적인 승용차, 그리고 1990년대 일본의 경차, 그리고 지금 대한민국의 전기차에 이르기까지—그 역사의 근간에는 철이라는 소재의 가능성이 존재하며 지금까지도 우리에게 말을 걸고 있다.
ⓒPebble Beach Concourse d’Elegance
‘철’이라는 소재는 단순히 전통적인 인간의 도구에서 멈추지 않고 시대에 따라 끊임없이 진화하며 자동차의 미래에도 깊이 관여하고 있다고 믿는다. 최근 지속가능성이 화두로 떠오르면서, 철의 역할 또한 새로운 가능성을 요구받고 있다. 철강은 재활용과 순환이 가능한 대표적 금속이며, 자동차 산업에서도 지속 가능한 모빌리티에 기여할 수 있는 핵심 소재다. 리사이클이 가능한 금속, 높은 내구성과 가공성을 유지한 채 생산된 철은 자동차 산업의 미래를 여전히 지탱하고 있다. 소재의 무게를 줄여 연비 효율을 높이고 안정성은 유지하는 고장력강판은, 기존 철이 지닌 한계를 기술로 돌파한 대표적 사례다. 실제로 고강도 경량 강판을 활용한 하이브리드, 전기차 구조 설계 등에서 지속 가능성까지 고려한 모빌리티 설계 철학이 주목받고 있다.
자동차 한 대의 디자인을 완성하기 위해 디자이너는 수많은 재질을 다룬다. 철, 플라스틱, 가죽, 나무, 카본 파이버, 알루미늄 등 재료는 무궁무진하다. 그중에서도 철은 가장 오랜 시간 동안 꾸준히 자동차 디자인의 중심 소재로 자리해 왔고 앞으로도 한동안 그 중심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철은 오랜 시간 자동차 문화와 진화의 역사를 함께해 왔고, 디자이너들은 이 익숙하면서도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소재 위에서 감각적 실루엣을 그려왔다. 얇으면서도 단단한 특성, 대량 생산과 가공의 효율성, 그리고 시간에 따라 축적된 신뢰성과 데이터, 미래의 지속가능성까지. 신소재가 계속해서 등장하고 있는 현재에도 철의 무한한 가능성은 유효하다.
ⓒBertone
디자인은 본질적으로 선택의 예술이다. 자동차 디자인은 외형뿐 아니라 내부 구조, 재료, 기능까지 수많은 선택이 축적된 결과물이다. 그 중심에서 철은 형태를 지탱하고, 브랜드 철학을 담아내며, 기술과 감성 사이의 균형을 잡는다. 단단한 물성 안에 유연함을 담을 수 있는 철은, 자동차 디자인이 추구하는 복합성과 감성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재료다.
결국, 철로 그린 실루엣은 단순한 형상이 아니다. 그것은 자동차라는 존재가 가진 기술적 진보, 감성적 아름다움, 브랜드의 철학을 모두 담아낸 조형 언어다. 앞으로 디자인의 흐름이 어떻게 변화하더라도, 철은 여전히 그 중심에서 새로운 실루엣을 그려낼 것이다.
에레보(Erevo) 정영철 대표
미국 ACCD에서 자동차 디자인을 전공했다. 귀국 후에는 자동차 전문 기자로도 활동했다. 현재는 자동차 문화 기획 브랜드 ‘에레보(Erevo)’를 설립해 전시, 공간, 디자인 기획 등 다채로운 방식으로 자동차 문화를 전달하고 있으며, 자동차 클럽하우스 ‘에레보 신사’를 함께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