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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5 min read

차가운 금속에서 가장 따뜻한 소리를 듣다

2025.10.24

세상의 소리 중에 가장 완벽한 음색을 가진 악기

금속을 두드려 울림을 빚는 핸드팬(Handpan). 단단한 스테인리스가 만들어내는 부드럽고 따뜻한 음색은 사람들의 마음과 귀를 사로잡는다.

이 악기를 한국에서 처음으로 제작해 브랜드로 성장시킨 사람이 바로 황형철 대표다. 작곡가이자 소리 연구가로서 음악과 공학의 경계를 넘나든 그는 ‘소리의 본질’을 탐구하며 차가운 금속 속에서 오히려 가장 따뜻한 울림을 발견했다. 예술과 기술, 감성과 로직 사이에서 새로운 소리를 만들어온 그는 더 많은 사람들이 핸드팬의 아름다운 울림을 통해 위로와 치유를 경험하길 바라며 오늘도 소리를 빚는다.


마음을 울리는 소리를 찾다


‘핸드팬’이라는 악기를 직접 제작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2008년쯤 여행을 많이 다니던 시기에 전 세계 예술가들이 많이 찾는 인도의 고아(Goa)라는 지역에서 처음으로 ‘핸드팬(Handpan)’을 만났어요. 거리의 연주를 듣는 순간 핸드팬 소리가 귀에 들어오더라고요. 한국에 돌아와서도 그 소리가 계속 마음에 남아 핸드팬을 사서, 연주를 배운 뒤 1년 정도 전국을 돌며 버스킹을 했어요. 그런데 핸드팬을 연주하면, 열 명 중 아홉은 멈춰서 듣더라고요. 아이부터 어르신까지, 누구나 발걸음을 멈추고 악기를 바라봤어요. 처음엔 단순한 호기심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는 걸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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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바라봤다고 생각했어요?

*‘하모닉스(Harmonics, 배음)’때문이였어요. 이 공명이 사람의 신체가 자연적으로 느끼는 주파수와 맞닿아 있어서, 사람들이 이 소리에 본능적으로 반응하고 있었던 거예요. ‘이건 단순히 새로운 악기가 아니라, 사람의 감각 깊은 곳에 닿는 소리구나.’라는 걸 그때 알고, 이건 내가 계속 가져가야 할 무엇인가라는 걸 깨달았어요. 그걸 계기로 연주자에서 제작자로 방향을 바꿨습니다. 

*하모닉스(Harmonics) : 하나의 소리 안에 여러 겹의 울림, 즉 배음(倍音)’을 말한다. 기본음(토닉) 외에도 옥타브와 완전5도(Perfect Fifth) 의 배음이 함께 공명하며, 세 음이 완벽한 비율로 울릴 때 금속은 단단한 소리가 아닌 맑고 따뜻한 공명을 낸다.

핸드팬 제작을 위해서 소리를 내기에 적합한 금속 재질이나, 음향 조율, 제작 방식 등 여러 분야의 지식이 필요하잖아요. 모두 독학한 건가요?

아무것도 모른 채로 멘땅에 헤딩했죠(웃음). 문래동 철공소를 돌며 철 소재에 관해 사장님들께 물어보고, 철의 특성을 배우며 손으로 직접 익혔어요. 예전에 소리와 비주얼을 연결하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던 회사 대표님과 함께 사람의 목소리나 다양한 소리를 분석하는 일을 한 적이 있었거든요. 그 경험 덕분에 소리를 ‘데이터’로 이해하는 감각도 있었고요. 핸드팬 소리를 분석해보니, 따뜻하고 부드러운 울림이 하모닉스 원리에서 비롯된 거라는 걸 더 자세히 알게 됐죠.

하던 일을 멈추고 사업을 시작할 때 ‘잘될 거다’, ‘브랜드가 성장할 거다’라는 확신이 있었나요?

사업적으로 접근했다면 아마 1~2년 만에 포기했을 거예요. 너무 힘들고 어려웠으니까요. 처음  핸드팬 제작을 마음먹었을 시기에 우연한 계기로 안동 전통 탈춤 ‘하회탈’에 빠졌었는데요. 하회탈이 오랜 세월 이어지는 걸 보면서, 사물을 중심으로 하는 예술 공동체를 만들고 싶은 마음이 더 컸기 때문에 사업적 성공을 크게 바라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그때는요(웃음).


10년 간 버텨온 사운드앤디자인(SND) 브랜드 로고 ©사운드앤디자인

그래도 망하면 안 되잖아요, 전 재산을 걸었는데.  실패할까 두렵진 않았어요?

두려웠죠. 그런데 ‘이건 꼭 해야 한다’라는 간절함이 더 컸어요. 집을 판 돈뿐만 아니라, 일하면서 번 돈도 모두 여기에 쏟아부었는데요. 초반에는 금형을 잘못 떠서 모아둔 자본을 다 날리기도 했어요. 그 일을 계기로 ‘제대로 공부해야겠다’라는 걸 깨닫고, 이후엔 훨씬 세밀하게 접근하며 기술을 다듬어 왔어요. 지금의 기술은 사실 그때의 실패 덕분에 생긴 거고요. 

실패를 하면서도 도전을 멈추지 않았던 이유는 뭐예요?

이 악기를 통해 제 삶의 ‘빛’을 봤거든요. 핸드팬의 소리 안에서 제 존재의 가치를 찾았고, 그걸 지키는 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 됐어요. 돈이든 타인의 시선이든, 사회적 기준이든 아무것도 신경 쓰이지 않았어요. 인생을 걸고 해야 하는 일이라 믿고 그냥 했어요. 

소명처럼 들리네요. 

소명이죠. 물론 사업적으로 힘들 때도 있었지만, 뜻이 분명하면 어떤 어려움도 견딜 수 있다는 걸 배웠어요. 매일을 ‘오늘 한 걸음만 간다.’라는 마음가짐 살았거든요. 


예술, 자기 한계를 뛰어넘는 일

실내, 사람, 벽, 의류이(가) 표시된 사진  자동 생성된 설명

사업자로 등록한 지 10년, 핸드팬 개발까지  12년이 됐다고요. 많은 우여곡절을 거쳐왔잖아요. 그동안 삶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궁금해요. 

처음엔 오로지 예술적 가치만을 위해 시작했어요. 좋은 악기를 만들고,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고 싶다는 생각뿐이었죠.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깨달았어요. 이 일을 지속하려면 예술만으로는 어렵다는걸요. 브랜드를 시작하고 3년 정도 지나자 악기를 찾는 사람들이 하나둘 생기기 시작하더라고요. ‘이걸 유지하려면 사업적으로 시스템이 필요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은 예술가이면서도 사업가로서의 시선을 함께 가지고 있습니다. 

대표님이 말하는 ‘사업적으로’란 어떤 의미일까요?

예술적으로 접근할 때는 직접 악기를 만들고, 그 안에 감정이나 철학을 담는 데 집중해요.  사업적으로 접근한다는 건 전혀 다른 일이죠. 숫자를 봐야 하고, 로직을 세워야 하고, 브랜드의 이미지와 방향성을 관리해야 하니까요. 단순히 좋은 악기를 만든다고 해서 사람들이 알아주는 건 아니잖아요. 어떻게 보여주고, 어떻게 들려주고, 어떤 방식으로 전달할지 고민해야 하죠. 지금은 예술적 가치를 지키면서도 회사를 운영하는 법을 배우고 있어요. 

연주자·연구자·사업가, 이 세 역할은 서로 어떤 영향을 주고받나요?

음악, 연구, 사업은 서로 다른 일 같지만 서로 상호보완 된다고 생각해요. 제가 작곡가, 소리 연구가로 벤처회사에서 ‘소리·비주얼·감정’을 매칭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하면서 예술가도 과학과 로직을 이해해야 하고, 과학자도 예술을 알아야 한다는 걸 느꼈어요. 요즘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예술과 기술 사이의 균형을 잡으며 작업하려 노력 중이에요. 

금방 예술가로서의 ‘철학’을 담아낸다는 말을 하셨는데요. 예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한계를 뛰어넘는 행위’요. 예술은 미술이나 음악, 예체능에만 있는 게 아니에요. 과학자도, 정치인도, 운동선수도, 자기 분야의 한계를 넘어서는 순간 예술가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모닉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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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속이라는 소재는 차갑고 단단한 이미지가 강한데, 핸드팬의 소리는 오히려 따뜻하고 부드럽잖아요. 어떻게 그런 소리를 낼 수 있나요?

이 악기는 망치로 두드려가며 그 비율을 찾아가는 악기예요. 쉽게 말하면 사람의 목소리와 비슷한 원리입니다. 사람마다 목소리가 다르잖아요. 같은 음을 내도 다르게 들리는 이유는 각자의 ‘배음 구조’가 다르기 때문이에요. 그 배음의 구조가 바로 소리의 개성을 만드는 요소죠. 그렇다면 ‘가장 완벽한 목소리’는 어떤 걸까? 궁금하시죠(웃음)? 하모닉스 비율이 완벽하게 맞아떨어지는 소리예요. 기본음(토닉)과 옥타브, 그리고 5도. 이 세 주파수가 정확히 일치할 때 좋은 소리가 나요. 그게 하모닉스 원리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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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팬이 스테인리스 합금으로 만들어지잖아요. 금속 소재가 다양한데 이 소재를 사용하는 이유가 있나요?

철판 중에서도 스테인리스가 가장 안정적이면서 맑은 소리를 내거든요. 일반 철판이나 다른 합금 등 다양한 소재를 두드려봤는데, 스테인리스가 가장 좋은 울림을 준다는 걸 알게 됐죠. 이 소재의 장점은 세 가지로 볼 수 있어요. 가공성과 강도가 좋아 일정한 두께와 탄성을 유지하기 쉽고, 열처리할 때 색이 자연스럽게 변해 원하는 톤을 조절할 수도 있고요. 녹이 잘 슬지 않아서 오랫동안 연주해도 형태가 안정적으로 유지됩니다. 좋은 소리를 위해 선택한 금속이었지만,  디자인적인 아름다움까지 함께 얻었고요.

열처리 온도에 따라 색이 달라진다는 건, 색을 의도적으로 조절하신다는 뜻인가요?

열처리 온도를 미세하게 조절해 색을 조정합니다. 온도가 높으면 짙은 색이, 낮으면 밝은 색이 나와요. 열처리 온도에 따라 금속의 질감이 조금 달라져서, 소리가 살짝 더 부드럽거나 또렷하게 들릴 수 있지만 큰 차이는 없어요. 소리의 피치는 금속판 위 타원 형태의 크기와 깊이에 따라 결정돼요. 큰 타원은 저음, 작은 타원은 고음을 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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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 과정이 궁금해요.

사운드 핸드팬 하나를 만드는 데 평균 열흘 정도 걸려요. 먼저 금형으로 찍어낸 철판, 즉 ‘쉘(Shell)’의 표면을 고르게 샌딩해서 다듬고, 각 음정에 맞게 프레스로 눌러 타원 모양을 만듭니다. 그다음 열처리를 해서 금속의 강도를 안정화시키고, 본격적으로 튜닝에 들어가죠. 튜닝은 세 단계로 진행돼요. 1차는 전체적인 음정을 잡는 단계, 2차는 철의 복원성을 고려해 미세하게 다시 조정하는 단계, 3차는 상판과 하판을 붙인 뒤 내부 구멍을 통해 손을 넣어 아주 정밀하게 맞추는 단계예요. 철은 시간이 지나면 원래 형태로 돌아가려는 성질, 즉 ‘회귀성’을 가지고 있어서 튜닝을 여러 번 반복해야 합니다. 경우에 따라선 4~5차까지 하기도 해요. 이건 단순히 두드리는 게 아니라, 주파수를 1Hz 단위로 맞추는 작업이에요. 1Hz라도 어긋나면 하모닉스가 깨지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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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소리를 찾는다는 건 엄청나게 섬세한 일이잖아요. 이 악기를 다루기에 힘들진 않아요?

힘들죠(웃음). 튜닝을 할 때마다 엄청 예민해져요. 제 상태가 그대로 악기에 스며들기 때문이에요. 작업할 땐 명상하듯 집중하려고 해요. 마음이 불안하면 소리도 거칠고, 평온하면 악기도 따뜻하게 울리죠.  튜닝은 단순히 어떤 기술이 아니라 제 마음을 다스리는 과정이기도 해요(웃음).

직접 악기를 누군가 연주하는 것을 볼 때 어떤 감정을 느낄지 궁금해요. ‘모든 걸 다 걸었을 만큼’ 다 쏟아부었잖아요.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버티고 견디며 포기하지 않았던 시간이 헛되지 않았구나 싶죠. 핸드팬의 소리는 단순한 음악이 아니라 사람의 몸과 마음을 진동시키는 주파수예요. 저는 이걸 ‘위로의 소리’라고 부르는데요. 듣는 사람뿐 아니라 연주하는 사람도 함께 치유가 되거든요. 실제로 한 분이 “이 소리 덕분에 명상을 하게 됐고, 삶이 달라졌다”라고 연락을 주신 적이 있었어요. 그 말을 들었을 때 정말 울컥했습니다. 보람 있었죠. 

핸드팬이라는 악기를 저도 이번에 대표님을 통해 처음 알게 됐는데요. 소리가 굉장히 부드럽고 따뜻하더라고요. 핸드팬을 한마디로 소개한다면 뭐라고 소개하시겠어요?

‘세상의 소리 중에 가장 완벽한 음색을 가진 악기’라고요. 완벽한 비율의 배합을 가진 소리라는 자신감이 있어요. 더 많은 사람들이 사운드 핸드팬의 소리를 알고, 즐겼으면 해요.

앞으로 대표님의 나아갈 방향이 궁금해져요.

‘사운드 앤 디자인(SND)’은 그 철학을 실험하고 구체화하는 공간이에요. 소리와 디자인이 조화를 이루는 악기, 즉 하모닉스 원리를 기반으로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고 싶어요. 단순한 제품이 아니라, 예술과 과학이 만나는 지점을 보여주는 결과물이었으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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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공동체도 만들고 싶다고 하셨잖아요. 그 프로젝트도 하고 계신거죠?

네, 제가 만든 ‘탈각고(脫殼鼓)’라는 팀이 있어요. ‘고통을 깨닫고 벗어난다’는 뜻을 담았어요. 언젠가 제가 없어도 누군가 이 악기를 연주하며 공연을 이어가는 구조를 만들고 싶어요. 연주자는 바뀌어도 작품은 남아 지속되게 만드는 것, 그게  제가 꿈꾸는 비전이에요.

또 있어요?

제가 50살이 되면 아들이 20살이 되는데 아들이랑 둘이 디제잉 하면서 놀고 싶네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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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운드앤디자인(SNS) 황형철 대표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넘나들며 소리 연구에 매진해 온 작곡가이자 소리 연구가. 현재는 금속 악기 ‘핸드팬’을 제작하는 사운드앤디자인(SND) 대표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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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oment 편집인 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