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게에 들어서자마자 연신 궁금한 것들을 물으며 오히려 이야기를 이끄는 임희원 셰프.
그의 에너지 속에는 활기와 여유로움이 동시에 느껴진다. 임희원은 <흑백요리사>에서 ‘셀럽의 셰프’로 출연했다. 안성재 심사위원에게 ‘베지테리언 사시미’라는 요리를 선보였는데, 여러 설명을 붙이기보다 그저 눈을 감고 음식을 즐기기를 권했다. 덕분에 “저에게 자유를 줬어요”라는 안성재의 칭찬을 받으며 긍정적인 인상을 남겼다.
그는 22년간 요리를 해온 베테랑이며, 현재는 한남동의 레스토랑 ‘부토’에서 자연에서 온 재료의 특성을 살린 요리를 완성하고 있다. ‘셀럽의 셰프’로 불리지만 그의 요리는 화려함보다 ‘일상적인 요리를 통한 지속 가능성’과 ‘함께 즐기는 식탁’에 가깝다. 한식의 아늑함 위에 현대적인 감각을 더하면서, 재료와 계절이 가진 이야기를 음식으로 옮긴다.
단맛이 오르는 풍성한 계절, 가을
Q. 오늘 소개해주신 요리는 ‘대하 소금구이와 가을 무 튀김’이죠. 가을 제철 메뉴로 선택하게 된 이유가 있나요?
가을은 풍성함의 계절이잖아요? 여름에 무덥고 지쳐있던 것들이 곧 맞이할 겨울을 위해 지방을 흡수하기 시작해요. ‘대하’는 살이 차오르면서 톡톡 터지는 식감이 생기고 단맛이 크게 올라와요. ‘무’ 역시 여름에는 서걱서걱하고 쓴맛이 강한데, 가을부터 단단해지고 단맛도 서서히 오른답니다. 겨울을 알리는 전초전 같은 한 접시에요.
Q. 조리 방식을 통해 제철 재료의 특성을 더 끌어올리신 것 같아요.
무는 다 익혀서 부드러운데 한 번 더 튀겼어요. 이러면 새우처럼 톡톡 씹히면서도 부드러운 식감을 줄 수 있고 고소한 맛이 더 올라와요. 새우 머리로 끓인 소스의 경우에는 우리나라식 새우탕에서 나온 거라고 보시면 돼요. 새우 머리는 감칠맛이 좋아서 다른 재료와 함께 끓여서 매콤한 소스로 올리는데, 제철 재료의 단맛을 더 부각해주기도 한답니다.
Q. 매운맛으로 단맛을 부각하는 것도 좋은 전략이네요.
그리고 제가 코코넛 밀크를 새우에 바르잖아요? 이 크림 덕분에 약간 동남아 음식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한국적인 재료에 하나의 재미를 주고 싶었어요.🎨 사람들이 요즘은 한식만 먹지 않잖아요. 한식 안에서도 다양한 팔레트를 받아들이고, 글로벌한 감각을 포용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먹는 사람이 즐거울 수 있도록 마음을 헤아려 보려고 해요. 결국 요리는 소통이니까요.
Q. ‘부토’ 메뉴에는 이 요리가 보이지 않던데, 전에 하시던 요리인가요?
이게 사실 <흑백요리사> 두 번째 라운드에서 보여드렸던 요리에요. 대신 재료가 조금 달랐죠. 당시에는 토마토 워터, 새우 머리를 볶은 고추 기름을 사용했어요.
Q. 식재료를 구하는 과정도 궁금해요.
식재료는 다양하게 구해요. 가락시장 도매, 경동시장, 때로는 지역 5일장에서 직접 구매하기도 하고요. 여행이나 행사로 지방을 다니다 보면 좋은 농산물을 발견할 때가 많아요. 그럴 땐 연락처를 받아 꾸준히 택배로 받죠. 예전엔 아버지와 함께 직접 배추를 길러 김치를 담그고, 정관 스님과 장을 담그기도 했어요. 홍콩에 살던 시기에는 한국에 올 때마다 저희 집 옥상에 된장을 담가 두고 필요할 때마다 가져와서 썼죠. ‘부토’에서 쓸 장도 미리 3년치를 담았는데, 1년도 안 돼서 다 써버린 거 있죠(웃음). 그래서 스님께 도움을 받기도 했어요.
Q. 장도 직접 담그는군요!
장 담글 때 물도 정말 중요해요. 서울에서는 수돗물을 쓰잖아요? 정관 스님이 계신 전라도 장성 백양사에는 지하수가 나와요. 그 물이 미네랄 함량이 높은지 장을 담그면 더 좋은 맛이 나요. 생각보다 어마어마한 차이가 난답니다. 물도 재료에요.🫧
Q. ‘물’을 요리의 재료로 생각해본 적은 없는데, 그러고 보니 하나의 재료이기도 하네요! 그렇다면 셰프님께서는 요리나 식재료에 대해 중요하게 생각하는 철학이 있을까요?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신선함’이에요. 신선한 재료를 구해서 바로 먹는 게 제일 맛있어요. 농장을 운영할 때도 채소 하나를 따서 바로 먹으면 순수한 단맛이 나요. 그런데 이 채소를 한 번 자르면 공격 받았다고 느끼고 독을 만들어내요. 쓴맛이 나거나 단맛이 빠지는 거죠. 그래서 얼마나 산지에서 재배한 재료를 빠르게 옮겨와서 먹느냐가 중요해요. 제철 재료도 마찬가지죠. 제일 나오고 싶을 때 온도, 습도에 맞게 자연스럽게 나온 재료니까요.🌱
Q. 제철에 먹는 요리의 맛은 정말 다르긴 하더라고요.
요즘 기술이 좋아져서 하우스 재배도 하는데 그런 재료들을 먹지 말자는 건 아니에요. 스테비아 같은 재료도 그렇고 다 식탁에 필요해서 나왔을 테니까요. 사계절, 거리 등 조건에 관계 없이 저렴하게 먹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고요. 다만 제철 재료를 먹으면 재료의 싱싱함에서 오는 행복이 있죠. ‘이 계절이 와서 제철 요리를 먹는다’가 아니라, ‘이 요리를 먹기 때문에 계절이 온 걸 느낀다’는 감각이 더 맞는 것 같아요.
요리를 통해 사람을 만나는 시간
Q. 셰프님이 요리 경력 22년의 베테랑이신 걸로 알고 있어요. 그 사이에 어떤 일들이 있었나요?
원래 한정식으로 출발했어요. 군대에서 취사병으로 근무한 이후 다양한 요리를 접하며 방향을 조금씩 넓혀갔죠. 처음엔 푸드스타일링을 전공했는데, 우연히 만난 이탈리아 셰프의 파스타를 먹고 충격을 받았어요. 그전까진 파스타를 싫어했거든요. 그 한 접시가 제 인생을 바꿨죠. 이후 이탈리안 요리를 6~7년 정도 했고, 방송에도 나가며 셰프로서 여러 경험을 쌓았습니다.
하지만 방송을 하면서 ‘나는 아직 배워야 할 게 많은데, 너무 빨리 소비되는 건 아닐까’라는 고민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모든 걸 내려놓고 홍콩으로 건너가 3년간 셰프로 근무했어요. 그곳에서 한국인 최초로 매거진 ‘크라브(Crave)’ 아시아 패널로 활동했고, 미슐랭에도 등재됐죠. 그렇게 2018년에 한국으로 돌아와 ‘부토’를 오픈했습니다.
Q. 셰프로 22년 생활하시면서 다양한 일들을 겪으셨을 것 같아요. 힘들었다거나 황당한 경험을 하신 적도 있나요?
많이 있긴 해요(웃음). 한 번 호주산 안심을 손질할 때였어요. 일정한 크기로 자르기 위해서 구간을 나눠서 고기를 썰었죠. 중간 부분을 자르는데 칼에 뭔가 걸리는 거예요? 보니까 총알이에요. 아마 소를 총으로 잡아서 그런 것 같아요. 0.5cm만 빗나갔어도 손님 접시에 올라갈 뻔했죠. 아찔했어요.
Q. 다양한 부류의 손님들을 겪기도 할 것 같아요.
진상 손님이요? (웃음) 저는 많이 만나지 못 했어요. 음식에 불만이 있다면 다시 만들어 드리면 되죠. 손님이 겪는 문제를 진심으로 대하면, 결국 그 손님도 저를 좋아하게 되시고 일을 크게 만들 게 없어요. 그리고 식당은 결국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곳’이잖아요? 요즘은 웬만한 레스토랑은 다 맛있어요. 결국 차이를 만드는 건 음식이 아니라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손님들과 농담도 나누고, 단골이면 메뉴를 바꿔드리기도 해요. “요즘 바빠서 신경 못 써드려 죄송해요. 그래도 우리 의리 있잖아요?”
이런 말 한마디로 웃고 가시죠.
Q. 셰프로서 가장 큰 행복은 언제 느끼시나요?
손님이 맛있게 먹어줄 때요. 그게 전부에요. 셰프라는 직업은 고되고, 노동시간도 길고, 페이도 높지 않아요. 그럼에도 계속 하게 되는 이유는, 내가 만든 음식을 누군가 바로 맛보고 반응해주는 그 순간 때문이에요. ‘맛있어요’ 한마디면 그 피로가 싹 풀리죠. 그래서 행복도, 실망도 모두 즉각적으로 와요. 그게 이 일의 매력이자 어려움이에요.
Q. 혹여나 손님이 안 좋은 반응을 보일 때는 어떻게 극복하세요?
딱히 ‘극복’ 같은 건 없어요. 그냥 하는 거예요. 때로는 안 좋은 이야기를 듣고 당황스럽다가도 당장 요리를 만들기 시작하면 감정은 잊어요. “지금 내가 집중해야 할 건 이거다.”라는 생각으로 계속 나아가죠.
Q. 일에 바로 집중하실 수 있다니. 멘탈이 강하신 것 같아요! ‘흑백요리사’ 출연하신 후 1년이 지났더라고요. 그 사이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도 궁금해요.
경쟁하는 걸 원래 좋아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코로나로 인해 모든 게 멈춘 시기에 많이 위축되었어요. MBTI도 E(외향형)에서 I(내향형)로 바꼈답니다. 새로운 계기가 필요했어요. 그래서 도전했죠. 결과보다 중요한 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거였어요.
방송 이후 더 바빠졌고, 행사와 협업도 많아졌어요. 무엇보다 제 요리 철학인 ‘자연주의’, ‘일상식’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할 기회가 생겼죠. 저는 비건은 아니에요. 그냥 일상적으로 자연에 가까운 식사를 하는 게 건강한 삶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메시지를 전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줬다는 점에서 늘 감사합니다.
따뜻한 동반자, 철
Q. 주방을 보면 다양한 그릇과 조리 도구가 보이는데요. 그중에 특히 애착이 가는 철 조리 도구가 있을까요?
이 수저를 참 좋아해요. 손잡이를 보면 끝이 조금 닳아 있어요. 누룽지를 긁었을 수도 있고, 오랫동안 쓰다 보니 생긴 사용감이죠. 사실 그 수저는 정관 스님이 오래 사용하시던 것인데, 제가 전해받아 쓰고 있습니다.🥄
수저로 호박이나 무 같은 부드러운 채소를 살짝 떠서 ‘툭툭’ 끊어내요. 칼로 자르지 않고 수저로 떼어내면, 식재료가 가진 조직감과 결이 그대로 살아나거든요. 스님은 야채도 생명이기 때문에 가능한 한 칼날을 대지 않고 자연이 가진 형태 그대로 유지하려 하셨어요. 밥 먹는 도구로만 쓰이던 숟가락이 이제는 생명을 존중하는 마음을 담은 ‘조리 도구’가 된 거죠. 우리가 밥을 퍼 올릴 때도, 그 안에는 생명이 담겨 있고 그 생명을 다듬는 것까지 모두 연결되죠.
Q. 큰 의미와 이야기가 담긴 숟가락이군요.
스님께서 40년 넘게 쓰시던 가마솥도 선물로 주셨어요. 원래는 부토를 열 때 가마솥이 들어갈 아궁이 크기를 가늠해보려고 잠시 빌려온 거였어요. 가게 첫 손님으로 정관 스님을 모셨는데, 그때까지 새 가마솥을 구하지 못했죠. 스님께서 가마솥 달라는 거냐며 농담으로 말씀하시더니 진짜로 오픈 선물로 주셨답니다. 수저와 함께 세트로 주신 귀한 선물이에요. 그리고 ‘부토의 심장’으로 함께 하다가 지금은 사무실에 잘 간직하고 있습니다.
Q. 원래 이 곳에 가마솥이 있었군요!
부토를 처음 만들 때는 딱 한 장면으로 시작했어요. 아궁이 주변에서 삼촌들과 둘러앉아 음식을 먹는 기억의 한 장면이죠. 그래서 가마솥을 두고 좀더 현대적으로 각색해서 꾸몄어요. 지금은 솥밥을 먹을 수 있는 식당이 많지만 당시에는 없어서 신기해하는 분들도 계셨어요.
Q. 그렇다면 셰프님께 주방에서의 철은 어떤 의미인가요?
우선 깨끗해요. 단단하고 위생적이죠. 또 저희 부토가 토속적인 느낌이 많은데, 철이 들어가면 모던하고 세련된 느낌을 더해주는 거 같아요. 그리고 오랜 시간 철 도구들을 쓰다 보니까 익숙한 데서 오는 안정감과 따뜻함이 있어요. 밖에서 행사하고 인터뷰 하다가 주방에 들어서서 철을 들면 마음이 편안해져요. 정든 동반자 같아요.🍴
‘마을 이장’을 꿈꾸는 임희원 셰프의 다음 챕터
Q. 여러 도전을 이어오고 계신데요.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계획하고 있는 게 많아요. 요즘은 ‘술빵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어요. 생각보다 ‘술빵’을 먹을 만한 곳이 없어요. 그래서 한국의 전통 발효빵인데 어떻게 더 알릴 수 있을까 생각했어요.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외국인들도 즐길 수 있는 로컬 브랜드로 키우려 해요.
Q. 이야기를 들을 수록 한국 전통과 로컬 푸드에 진심이신 것 같아요.
저는 사실 오래전부터 ‘마을 이장’이 되는 게 꿈이었어요(웃음).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이야기 나누고, 서로의 삶을 공유할 수 있는 그런 공동체적인 공간을 만드는 일을 하고 싶었죠. 요리를 하면서도 늘 그 마음이 있었던 것 같아요.
Q. ‘마을 이장’이라는 말이 너무 잘 어울리세요!
단순히 음식을 만드는 셰프가 아니라 ‘푸드 스토리텔러’가 되고 싶어요. 음식은 그 자체로도 아름답지만 그 안에는 지역의 풍경과 사람들의 이야기가 녹아 있거든요. 그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는 그릇과 공간, 그림과 음악, 심지어 패션까지 함께 어우러지는 복합적인 공간을 만들고 싶어요.
최근에는 대만을 비롯해 동남아 여러 나라에서 활동을 이어가며 해외 지역의 가능성도 탐색 중이에요.
그곳에서도 ‘함께 사는 감각’을 어떻게 세련되고 따뜻하게 보여줄 수 있을까 계속 고민하고 있습니다. 결국 제가 하고 싶은 일은 요리라는 언어로 사람과 지역, 문화를 이어주는 다리가 되는 것이에요.
그리고 언젠가, 그 모든 이야기가 한 식탁 위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지길 바라고 있습니다. 🌉 앞으로의 활동도 기대해주세요.
임희원 셰프의 ‘대하 소금구이와 가을 무 튀김’
조리 과정 따라가기
![[현대제철]임희원 셰프 썸네일 v3.jpg](/upload/editor/2025/10/20251029_165528075_17174.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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